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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한 샤라포바, '제2의 전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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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뷰티' 마리아 샤라포바(25)는 네 살 때부터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벨라루스에서 러시아 소치로 이사를 간 뒤 부친 유리의 친구인 알렉산드르 카펠니코프가 선물한 라켓이었다. 코치 겸 부친 유리는 첫 테니스 수업에서 샤라포바의 대성 가능성을 엿봤다. 7세 때 샤라포바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플로리다에 위치한 세계적인 '닉 볼레티에리 테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 안드레 애거시, 모니카 셀레스, 안나 쿠르니코바 등을 길러낸 아카데미였다. 가난했다. 가진 돈은 겨우 700달러였다. 영어를 할 줄 몰랐던 부친은 접시닦이 등 잡일로 샤라포바의 아카데미 입학금을 벌었다. 어렵게 테니스 선수생활을 이어가던 샤라포바는 9세가 되던 1995년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 IMG와 계약을 맺는다. 그러면서 3만5000달러(약 4100만원)의 수업료 부담을 덜었다.

주니어대회를 평정해나가던 샤라포바가 프로선수로 데뷔한 것은 2001년이었다.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여자프로테니스투어(WTA) 랭킹을 끌어 올리던 샤라포바는 2004년 대형사고를 친다. 4대 메이저테니스대회인 윔블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회 세 번째 최연소 우승자였다. 그녀의 나이는 17세였다.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2005년 8월 22일 세계랭킹에서 맨 꼭대기에 섰다. 러시아 여성 테니스 선수 최초였다.

샤라포바는 2006년 US오픈마저 제패했다. 두 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검정드레스를 입고 우승한 터라 기쁨이 두배였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듬해 불운이 찾아왔다. 허벅지 뒷 근육과 어깨 부상을 당했다. 세계랭킹이 5위까지 떨어졌다. 자존심은 2008년 만회했다. 호주오픈을 우승했다. 2년 주기로 메이저대회를 휩쓸었다. 샤라포바는 세계랭킹 1위도 탈환했다. 쥐스팅 에넹(프랑스)이 돌연 은퇴하면서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부상의 악령은 계속해서 샤라포바를 힘들게 했다. 결국 2009년 어깨 수술을 받아야 했다. 테니스 선수에게 치명적인 어깨 수술로 은퇴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2010년과 2011년 복귀의 발판을 마련하더니 2012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호주오픈 준우승을 시작으로 WTA투어 2개 대회를 우승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오직 하나의 대회만 보였다. 바로 프랑스오픈이었다. 클레이코트 26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지만 이번엔 달랐다. 10일(한국시각) '돌풍의 주인공' 사라 에라니(이탈리아)를 2대0(6-3, 6-2)으로 완파했다. 꿈에 그리던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여자 선수 가운데 10번째였다. 기쁨은 두배였다. 세계랭킹 1위도 되찾았다. 1월 호주오픈 결승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를 밀어냈다. 샤라포바의 '제2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