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이가 잘 해주는 것도 강팀이 되는 조건 중 하나죠."
LG 김기태 감독은 정성훈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 2일 경기서 승리한 뒤 모처럼 정성훈을 언급했다. 정성훈은 2일 잠실 한화전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특히 32일만에 터진 홈런은 승리를 가져온 결승 스리런포였다. 경기 후 모처럼 수훈선수 인터뷰까지 했다.
아직 100% 감을 찾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걸까. 정성훈은 3일 경기서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아직 타격 사이클이 상승 궤도에는 접어들지 못했다는 증거다.
정성훈은 4월 한달간 타율 3할1푼에 7홈런 16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월간 MVP를 수상했다. 거포가 아닌 정성훈이 올시즌 LG의 4번타자로 낙점되자 모두가 우려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성훈은 장타력까지 겸비한 해결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5월1일 잠실 한화전에서 터진 시즌 8호 홈런을 끝으로 홈런은 사라졌고, 타격감도 함께 떨어지기 시작했다. 열흘 이상 앓았던 감기 몸살이 이유였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팀 사정상 계속 출전을 강행하다 결국 탈이 났다. 배트에 공이 잘 맞지 않기 시작한 뒤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오면서 밸런스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김무관 타격코치는 정성훈의 5월 부진의 이유에 대해 묻자 "원래 정성훈처럼 중심이동 타법을 쓰는 타자들의 경우,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 한번 흐트러지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답했다.
오른손타자인 정성훈은 타격 준비 자세부터 특이하다. 왼발과 오른발을 어깨 너비보다도 좁게 벌리고 서서 공을 기다린다. 평범하게 배트를 들고 서있다 공이 오면 왼 다리를 오른 다리보다 더 오른편으로 끌어당긴 뒤 힘차게 내딛으면서 배트를 돌린다. 왼 다리를 끌어올린 상태의 정지 화면을 보면 마치 투수가 공을 뿌릴 때 나오는 키킹 동작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발을 내딛으면서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앞으로 가져와 배트에 힘을 싣는다. 빠른 배트 스피드가 뒷받침되고, 임팩트 시 중심을 확실히 싣는 정성훈 만의 타법이다.
맹점은 있다. 바로 다른 타자들에 비해 배트 중심에 맞히는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밸런스가 완벽히 잡혀있고, 타격감이 물이 올라 최고의 박자 감각이 몸에 배 있을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의 200% 이상을 끌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성훈은 이 타이밍을 잃은 뒤 부진에 빠졌다.
김 코치는 "감기몸살로 고생한 뒤에 다리를 드는 타이밍, 내딛는 타이밍 모두 조금씩 엇갈려갔다. 조금씩 무너지던 밸런스가 완전히 깨지게 됐다"며 "지금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조금 빨리 다리를 든다든지, 늦게 든다든지 하면서 타이밍을 조절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선수의 단점을 개선하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쪽이다. 정성훈의 5월 부진도 일시적이기에 억지로 무엇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타이밍을 맞추어가는 것만 도와주고 있다. 김 코치는 "성훈이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경기 전은 물론, 경기가 끝나고도 혼자 남아서 공을 맞히는 박자를 갖고 맹연습을 한다"며 "아직 가장 좋을 때의 배트 스피드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조금씩 공이 맞아가고 있다. 조만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웃었다.
정성훈은 "감독님과 타격코치님이 계속 믿고 4번으로 내보내주시는데 중요한 찬스에서 역할을 못했다. 팀 패배가 늘면서 정말 죄송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4번타자가 주는 책임감과 중압감에서 벗어나야만 슬럼프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다. 현재 코칭스태프에서도 5번이나 6번으로 내보내고 있는 만큼, 부담없이 방망이를 돌리다 보면 다시 상승세에 접어드는 건 시간 문제가 아닐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