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태희, 장근석, 구하라 등이 잇달아 일본에서 혐한류 피해를 입으면서 한류에 위기가 닥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태희는 2005년 친선대사 자격으로 방문한 스위스에서 독도 홍보 활동을 펼친 것 때문에 혐한류의 표적이 됐다. 3월 말 열릴 예정이었던 CF 제작발표회는 갑작스럽게 취소됐고 우익단체는 김태희 퇴출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장근석도 "스시가 먹고 싶다"고 했던 과거 발언이 일부 혐한류 매체에 의해 성인배우 이름을 넣어 왜곡 보도되면서 난데없는 곤욕을 치렀다. 최근엔 구하라의 속옷을 악의적으로 찍어 게재한 성인잡지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같은 사실만 놓고 보면 혐한류가 무서운 기세로 팽창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일본 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K-POP 인기, J-POP과 구분 필요 못 느껴
지난 30일 K-POP 그룹 3팀에 동시에 도쿄에서 공연을 가졌다. 신화가 도쿄 인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한 아시아 투어를 통해 4년만에 일본팬들을 만났고, 샤이니는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 제1체육관 무대에 섰다. 2PM은 부도칸 단독 콘서트 '6 뷰티풀 데이즈(6 Beautiful Days)'의 다섯 번째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수만장의 티켓을 순식간에 매진시켰을 만큼 현지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말 그대로 K-POP이 도쿄를 강타한 밤이었다. 이보다 보름 앞선 5월 12일과 13일에는 슈퍼주니어가 도쿄돔에 총 11만 관객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31일 찾아간 도쿄의 중심가 신주쿠에서도 한류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타워 레코드 신주쿠점은 출입구 앞 매장 한가운데에 장근석 입간판과 단독매대를 설치해 놓았다. 장근석은 30일 일본 정규 1집 발매 즉시 오리콘 데일리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J-POP과 K-POP은 한 개 층을 양분하며 나란히 비치돼 있었다. 한 현지인은 "J-POP과 K-POP을 구분지어 생각하지 못할 만큼 K-POP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K-POP 매대에는 슈퍼주니어, 2PM, 빅뱅, 소녀시대, 카라, 티아라, 동방신기 등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4월에 일본에서 데뷔한 신인 걸그룹 치치(CHI-CHI)가 쟁쟁한 선배 그룹 사이에서도 K-POP 앨범 차트 3위에 이름을 올려놓아 특별히 더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OST와 DVD도 인기 상품 중 하나다. 최근에 종영한 MBC '더킹 투하츠', SBS '옥탑방 왕세자', KBS2 '사랑비'의 OST도 소개돼 있었다. 한국과 거의 동시에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일본의 지역 케이블 방송사들은 한류로 인해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우범지역이던 신오쿠보, 이젠 한류의 메카
K-POP과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코리아타운을 명소로 바꿔놓았다. 일본에서 한류의 성지로 알려지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신오쿠보 지역이다. 한인들과 유학생들이 밀집해 살던 이곳은 2000년 이전만 해도 일본인들은 잘 찾지 않는 우범지역이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겨울연가'와 배용준을 시작으로 한류가 형성되고 그 뒤를 이어 '대장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한류스타 관련 상품을 찾으려는 일본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현재 수백개의 한국 상점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도쿄의 대표적인 명소로 급부상했다.
신오쿠보의 진가는 낮 시간에 경험해볼 수 있다. 점심 시간이면 한국식당 앞은 일본 현지인들로 길게 장사진을 이루고, 떡볶이와 호떡 같은 분식들도 불티나게 팔린다. 주말이면 일본 젊은이들로 거리가 가득 차서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고 한다. 30일 찾아간 신오쿠보에선 한국어를 일본어 못지않게 많이 볼 수 있었고 드라마 '여인의 향기' 포스터도 거리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한 일본인 한류팬은 "'혐한류'는 극히 소수일 뿐이다. 오히려 한류팬이 더 늘어나고 있다. 일본인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영향을 잘 안 받는다. 혐한류 때문에 한류가 위축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한국인 사업가도 "오프라인에서 대놓고 혐한류 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주로 온라인 중심이다. 혐한류를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만큼 세력이 크지 않다"며 "일본에서 혐한류를 경험하고 싶으면 야스쿠니신사를 가면 된다고 농담을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도쿄(일본)=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