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8개 구단 4번타자 기상도, 누가 남았고 누가 꿰찼나

by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프로야구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선발이나 중간계투 마무리, 보직에 따라 성격이 조금씩 다른 투수는 제쳐두더라도 타자들에게도 이 말이 적용된다. 경기에 나서는 9명 모두 타석에 들어서는 건 똑같지만 타순에 따른 특수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리가 바로 이 특수성을 만들어낸다. 흔히 1번타자와 2번타자에겐 '테이블 세터'라는 별칭이 따른다. 말 그대로 밥상을 차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3,4,5번타자에겐 이들을 홈으로 불러들이라 해서 '클린업 트리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중에서도 '4번타자'가 갖는 특수성이 가장 크다. 타선의 최고 중심에 있는, 그리고 밥상이 차려졌을 때 컨택트가 좋은 3번타자에 이어 나와 '한 방'으로 대량 득점의 물꼬를 트는 역할. 이게 바로 4번타자에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개막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8개 구단 4번타자 기상도는 어떨까.

▶'내가 제일 잘 나가', 박병호-김태균

8명의 개막전 4번타자 중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넥센 박병호와 한화 김태균이다. 박병호는 팀이 치른 43경기 모두 선발 4번타자로 나왔고, 김태균은 지난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몸살증세로 딱 하루 출전을 걸렀을 뿐 매경기 4번타자 자리를 지켰다.

박병호는 그동안 거포로서의 잠재력은 인정받았지만, 꽃 피우지 못한 유망주였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중반 LG에서 넥센으로 이적한 뒤 "삼진 당해도 좋으니 마음껏 돌려라"는 김시진 감독의 지원 속에 최고 수준의 4번타자로 거듭나고 있다. 31일까지 11홈런 42타점으로 홈런 3위, 타점 1위를 달리고 있다. 앞뒤로 이택근 강정호가 있어 시너지 효과까지 나고 있다. 피해갈 곳이 없는 넥센 클린업트리오 속에서 우산효과를 보는 것. 무엇보다 본인이 홈런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니 자연스레 장타력이 살아났다.

'국내 복귀파' 김태균은 홈런이 5개로 다소 적지만, 타율 4할3푼2리로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유일한 4할 타자다. 63안타로 최다안타 1위까지 달리는 등 교타자로서의 면모를 뽐내고 있다. 홈런이 적어도 영양가는 만점이다.

▶4번 자리 내려놓고 임시직으로, 정성훈-최형우

LG의 '신개념 4번타자' 정성훈의 방망이는 4월 한달 간 뜨거웠다. 5월 초까지만 해도 홈런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감기몸살을 앓은 뒤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다. 급격히 내리막을 탔다. 홈런도 지난달 1일부터 8홈런에서 멈춰있다. 결국 26일 광주 KIA전에서 한차례 선발에서 제외된 뒤 6번타자로 자리를 바꿨다. 4번 자리는 잠시 최고참 최동수에게 내준 상태다.

삼성 최형우는 2군행이라는 극단적인 처방 뒤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형우는 시즌 초반 지난해 홈런왕(30홈런)의 위엄을 잃고 34경기에서 타율 2할6리 11타점으로 부진해 2군으로 떨어졌다. 엔트리 등록이 가능해진 31일 1군에 돌아온 최형우는 대전 한화전에서 곧바로 마수걸이 홈런을 터뜨렸다. 물론 그의 자리는 4번이 아닌 6번타자였다. 그동안 박석민과 이승엽이 대신 4번으로 나섰고, 아직 임시 조치는 유효한 상황이다.

둘은 정반대의 문제를 겪어 임시직으로 이동했다. 정성훈은 4월 한 달 간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 맞으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이 온 경우. 감기몸살로 방망이가 안 맞기 시작한 뒤 생긴 스트레스가 발목을 잡았다. 최근 들어 다시 배트 중심에 공이 맞아나가고 있기에 금세 감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형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타격감에 생각이 많아졌다. 2군에서 잡생각을 버리자 복귀전부터 홈런이 나왔다. 이날 경기처럼 가볍게 방망이를 돌린다면, 4번 자리는 손쉽게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난 어때?' 새로운 4번타자, 이범호-이호준

KIA 이범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지난 17일 뒤늦게 1군에 합류했지만. 복귀하자마자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호랑이군단에 자신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13경기서 타율 3할9푼5리 2홈런 9타점으로 좋은 타격감을 보이는 중. 무엇보다 침체돼 있던 KIA 타선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최희섭도 5번 타순으로 내려간 뒤 동반 상승 효과를 보고 있다.

SK 이호준은 개막전 때만 해도 주전 라인업에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베테랑답게 이만수 감독의 타순 고민을 해결해줬다. 믿었던 안치용이 4번타자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대타로 시작해 조금씩 출전시간을 늘려 아예 4번 자리를 꿰찬 것이다. 31일까지 타율 2할9푼7리 7홈런 23타점으로 팀 타선의 중심을 잡고 있다. 팀 내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김강민(2할9푼9리)에 이어 타율 2위. 안치용이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SK의 4번타자는 이호준이다.

롯데 홍성흔은 임시직을 거쳐 살아난 케이스다. 5월 중순 극심한 타격 부진을 겪고, 4번 자리를 후배 전준우에게 내주고 5번으로 내려갔다. 4번타자를 맡으면서 스윙이 커졌던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내 자리를 되찾고 살아났다. 시즌 기록은 타율 3할5리 6홈런 36타점. 장타 욕심을 버리면서 타점 3위를 달릴 정도로 해결사 본능을 보이고 있다.

두산 김동주는 들쑥날쑥한 타격감 탓에 최준석에게 4번 자리를 내주는 날이 조금씩 늘고 있다. 타율은 2할7푼6리, 홈런은 고작 1개에 타점 역시 15타점에 그치고 있다. 김진욱 감독의 시름이 깊어가지만, 두산의 해결사 역할은 김동주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