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좌타자 이승엽(36·삼성)과 한국 대표 좌완 류현진(25·한화)이 처음 맞대결했다. 지난 29일 벌어진 이승엽과 박찬호(한화)의 대결에 버금가는 빅 매치업 중 하나였다. 31일 대전구장에서 맞붙은 두 거물 스타의 맞대결은 타석 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둘은 서로를 꺾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류현진, 이승엽을 의식했다
류현진은 마치 이틀 전 팀 선배 박찬호가 이승엽에게 당한 걸 갚아주려 듯 전력 투구했다. 유독 이승엽을 상대할 때 더욱 집중했다. 박찬호는 29일 대전 삼성전 4회 2사 만루에서 이승엽에게 우전 적시타를 맞고 강판당했다. 그 경기에서 한화는 3대10으로 완패당했다. 30일 두 팀의 맞대결에서도 한화는 0대3으로 영봉패를 당했다. 류현진은 벼랑 끝 상황에서 삼성전에 선발 등판했다.
이날 맞대결 전까지 둘 사이에는 이틀 연속 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승엽은 29일 류현진과의 승부욕을 드러냈다. "류현진은 언젠가는 맞붙어야 할 투수다. 그런 선수와 붙어보는 것 만으로 큰 경험이 될 것이다. 꼭 팀에 도움이 되겠다." 다음날인 30일 경기 전에는 둘 사이에 보기드문 신경전이 발생했다. 이승엽이 훈련을 마치고 공을 정리하는 류현진에게 다가가더니 한마디 했다. 마침 류현진이 공을 발로 툭툭 굴려가며 모으고 있었다. "현진아, 공은 발로 차는 게 아니다." 류현진은 아무 말 없이 양팔을 벌리며 왜 시비를 거느냐는 식의 제스처를 취했다.
류현진은 이승엽을 첫 타석과 두번째 타석에서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승엽은 처음엔 바깥쪽 체인지업(구속 133㎞)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두번째는 바깥쪽 직구(148㎞)에 3구 삼진 당했다. 류현진은 공격적으로 윽박질렀다. 힘과 코너워크로 이승엽을 완벽하게 막았다. 이승엽은 두 차례 삼진으로 얼굴이 상기된 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이승엽, 전력질주로 허를 찔렀다
류현진의 완승으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승엽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6회 세번째 타석에서 류현진의 실책으로 출루했다. 이승엽은 이번에도 류현진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는 못했다. 1루수 앞에 땅볼을 쳤다. 그런데 한화 1루수 장성호의 토스를 받은 류현진의 베이스 커버가 어정쩡했다. 전력질주한 끝에 이승엽은 세이프. 이영재 1루심은 류현진의 발이 베이스에 닿지 않았다며 세이프를 선언했다.
류현진은 평소 이런 일에 비교적 둔감한 편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2사후에 주자가 없는데다, 발까지 느린 이승엽이라 살려준다 해도 크게 신경쓰일 건 없는 상황. 하지만 이례적으로 "(1루를)밟았어요"라고 수차례 말하며 모션까지 곁들여 심판에게 항의했다.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승엽, 다음엔 바깥쪽 노린다
류현진은 7회까지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7이닝 5안타(최형우 1홈런 포함) 2볼넷 13탈삼진으로 2실점했다. 2-2 상황에서 마운드를 바티스타에게 넘겨 승패를 기록하지 않았다.
류현진은 이승엽에게 삼진 두 개를 빼앗았고, 한 번은 실책으로 살려주었다. 이승엽은 3타수 무안타. 기록상으로 보면 류현진의 완승이었다.
앞으로 둘의 맞대결은 얼마든지 또 벌어질 수 있다. 류현진은 이날 바깥쪽 코스로 이승엽을 두 차례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승엽은 다음 대결 때 바깥쪽에 철저히 대비하고 나올 게 틀림없다. 류현진이 이 점을 역이용해 다음엔 몸쪽을 공략할 수도 있다.
이승엽은 6타수 만에 박찬호에게서 첫 안타를 치명적 적시타로 장식했다. 그 타구 하나가 박찬호를 강판시켰다. 이승엽은 박찬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류현진에게도 반격을 노리기 위해 '칼'을 갈 것이다. 대전=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