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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 2002년의 추억과 산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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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안지 감독은 여전히 한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법무부가 인정한 명예한국인이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그이지만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 있다. 바로 산낙지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2001년 한국 대표팀은 울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어느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 산낙지가 접시 위에 올라있었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네덜란드 코칭스태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천연덕스럽게 잘도 먹었다. 그때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이 조심스럽게 젓가락으로 산낙지를 건드렸다. 그러자 핌 베어벡 코치가 "한국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면 산낙지 먹는 걸 고려해보겠다"며 재빨리 두 손을 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목표가 그것밖에 안되나? 나는 한국팀이 결승에 오르면 산낙지를 먹겠다"고 피했다.

히딩크 감독은 29일 유소년 인재 육성을 위한 허정무-거스히딩크 축구재단 운영 협약식을 위해 '산낙지의 고향' 목포를 찾았다. 이날 협약식을 진행하던 전인석 아나운서가 '목포에 왔으니 낙지를 먹을 것인가'라고 묻자 "나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며 재빨리 피했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한-일월드컵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도 의미가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는 좋은 축구를 보여줬다. 그러나 월드컵은 축구뿐만 아니라 축제의 장이다. 당연히 한-일월드컵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국민이 보여준 태도와 열정에 세계인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월드컵서 한국이 기록한 골 중 16강행을 확정한 박지성의 포르투갈전 결승골과 전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린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꼽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뇰 귀네슈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은 한국 축구의 템포가 느리다는 지적을 했다. 히딩크 감독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10년전에 비해 많은 발전이 있었다. 지금 한국 축구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충분히 빠르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받은 사랑을 한국 축구 유소년 분야 투자에 힘쏟고 있다. 재단 설립도 이러한 취지다. 허정무 감독이 재단 대표이사를 맡아 업무전반을 관장하고 해외 체류기간이 많은 히딩크 감독은 명예이사장의 직함으로 재단을 지원하기로 했다. 협약식을 통해 장기적이고 체계화된 시스템 아래서 축구꿈나무를 육성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허정무-거스히딩크 축구재단은 히딩크 감독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진행한 드림필드사업을 승계하고,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는 인구 1600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축구 인프라가 잘 돼 있다. 한국은 인구가 더 많아서 잘만 교육시키면 재능있는 선수를 더욱 많이 키워낼 수 있다. 이를 위해 허 감독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