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한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해 '승부조작'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수많은 동료들이 소리없이 그라운드를 떠났고, 스승은 괴로움 속에 세상을 등졌다. '승부조작'의 망령이 채 가시기도 전 파렴치한 '부녀자 납치 강도범'으로 전락했다. '부녀자 납치 강도범, 발생 20분만에 검거.' 29일 서울 강남경찰서가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지난해 승부조작 파문의 중심에 섰던 국가대표 출신 축구선수 김동현(28)이 이번엔 부녀자 납치 및 차량 절취 사건의 주범으로 검거됐다. 상무 시절 친분을 쌓은 전직 프로야구 투수 출신 후배 윤찬수(26)와 범행을 공모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6일 새벽 2시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40대 여성 박모씨를 흉기로 위협, 차량을 빼앗고 박씨를 납치한 혐의(특수강도 등)로 김동현과 윤찬수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이 밝힌 범죄 내용은 충격적이다. 부녀자를 노린 '인면수심' 범죄의 전형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동현과 윤찬수는 25일 저녁 서울 청담동 한 극장 앞에서 시동을 켠 채 대기중이던 승용차를 절취한 후 강남 일대를 4시간 동안 배회했다. 26일 새벽 강남구청 앞 대로에서 나홀로 벤츠 승용차를 운전하는 여성 박씨를 표적 삼았다. 지하주차장까지 뒤쫓아갔다. 김동현은 차에서 내리는 박씨를 칼로 위협해 차량을 빼앗고, 강제로 태워 납치했다. 차가 속도를 늦춘 틈을 타 피해자 박씨가 탈출했다. 택시를 타고 추격전을 벌였다. 당황한 김동현 등은 차를 버리고 도주했지만 경찰은 즉시 출동해 20여분만에 현장에서 300ｍ 떨어진 영동고교 앞에서 이들을 검거했다.
2009년 LG트윈스에 입단한 전직투수 윤찬수는 2010년 상무 입대 직후 한양대 선배인 김동현을 만났다. 승부조작 때와 마찬가지로 상무에서의 '잘못된 만남'이 빌미가 됐다. 이들은 경찰에서 "사업투자 자금에 대한 이자 등으로 돈이 필요해 범행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김동현은 K-리그 승부조작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가중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촉망받던 한 축구선수의 끝없는 추락에 축구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