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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2008년의 봄, 초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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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임창용, 2008년의 흥겨웠던 봄날을 다시 기억해야 할 때다.

드디어 1군 콜업이다. 시즌 초반 1위를 달리기도 했던 야쿠르트는 29일 현재 최근 9연패로 나락에 빠지며 센트럴리그 4위로 내려앉았다. 3위인 한신과는 0.5게임차. 더이상 처지지 말아야 할 상황이다. 팀이 최대 위기에 빠진 시점에 임창용이 1군에 올라오게 됐다.

▶임창용, 1군 복귀의 배경

야쿠르트의 9연패는 2010년 5월 이후 2년만이다. 9연패를 하는 동안 2점 이상 낸 경기가 겨우 한차례 뿐이다. 최근 9경기 득점 상황은 1-3-1-1-1-0-0-1-1 순이다. 팀의 역대 최악 기록인 지난 1970년 10월 8경기 연속 1득점 이하 상황에 이어 42년만의 최악 득점력이다.

29일자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야쿠르트의 오가와 준지 감독은 비상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엔트리 대폭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연패중 28타수 1안타에 그친 외국인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2군으로 내려갔다. 양대 리그 통틀어 가장 많은 12홈런을 기록중이지만 오가와 감독은 칼을 빼들었다.

이런 와중에 2군에서 훈련중이던 임창용이 드디어 호출을 받았다. 올 정규시즌 첫 1군 등록. 임창용은 지난 3월22일 전반적인 컨디션 저하와 오른쪽 팔의 근육통 때문에 2군으로 내려갔다. 일본 진출후 정규시즌 개막전을 2군에서 맞은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2군에서 시속 151㎞ 기록

임창용은 큰 부상이 있어 2군에 머물렀던 건 아니다. 올해 전지훈련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아 조정의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었다.

2군에 있는 동안 임창용은 트레이너와 함께 최근 몇년간 없었던 타이트한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후 4시쯤 훈련 일정을 마치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질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컨디션을 끌어올린 뒤에는 2군 경기에도 계속 등판했다. 도쿄 북쪽의 사이타마현에 있는 야쿠르트의 2군 도다구장에서 임창용은 포심패스트볼 최고구속 151㎞를 기록했다. 2군 구장의 스피드건이 1군에 비해 낡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55㎞ 수준의 스피드를 낸 것이라고 한다. 지난 3월 시범경기때는 직구 평균구속이 130㎞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임창용 대신 마무리를 맡았던 토니 바넷이 그동안 잘 던졌다. 20게임서 1승12세이브 2실점으로 방어율 0.92를 기록중이다.

▶4년전과 반대 상황. 초심 재무장

지난 2008년 3월말에서 4월초. 임창용의 투수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었다. 일본 진출 첫해, 첫 개막 3연전을 치르던 시기였다. 본래 야쿠르트의 마무리는 이가라시 료타였다. 임창용은 셋업맨 자격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3연전에서 본래부터 팔에 문제가 잦았던 이가라시가 또한번 부상을 했다. 임창용은 곧바로 마무리를 맡았고, 좋은 활약을 보이며 지금까지 오게 됐다. 그후 이가라시가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임창용은 그대로 마무리 자리를 지켰다. 이가라시는 컴백한 뒤 셋업맨으로 뛰었다. 임창용이 워낙 잘 던지고 있으니 당시 감독으로선 보직 원위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부상이 주요 원인이라서 2군에 내려갔던 건 아니지만, 임창용은 정황상 4년여 전과 반대 입장에 놓이게 됐다. 즉, 임창용이 30일 1군 엔트리에 등록하더라도 마무리투수로서 뛰게 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수 운용법은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이다. 당분간 바넷이 계속 마무리를 맡고 임창용이 앞선을 책임지는 패턴이 될 수도 있다. 혹은 돌아온 마무리투수에게 기회를 준 뒤 상황을 점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가와 감독이 임창용과 바넷을 8,9회에 어떻게 투입할 지는 향후 경기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야쿠르트는 발렌틴의 타격이 필요하다. 2군에서 10일간 컨디션 조절을 마치면 발렌틴은 다시 1군에 올라올 전망이다. 따라서 일본프로야구의 1군 외국인선수 엔트리 4명에 살아남기 위해선 임창용도 건재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한때 국내에서 '퇴물' 취급 받았던 임창용이 다시 한번 무대 중앙으로 뛰어오른 시점이 바로 2008년의 봄이었다. 일본에 처음 건너간 뒤 느꼈던 긴장감과 노력.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