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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생생 인터뷰 "홈런왕은 강정호 아니면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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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승엽(36)은 인터뷰 약속 시간을 변경하고 싶다고 구단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당초 잡았던 시각은 훈련전 오후 2시40분. 이승엽은 특타가 갑자기 잡혔다며 훈련을 마치고 하자고 했다. 예정시각 보다 한 시간쯤 뒤 이승엽과 대구구장 한 구석 방에서 만났다. 지난 22일, 이승엽은 이번 시즌 처음으로 삼성의 4번 타자가 됐다. 이승엽은 "약속했던 시간을 바꿔서 죄송하다. 음료수는 제가 준비했다"면서 스포츠음료를 내밀었다. 삼성 라이온즈에 이승엽과의 인터뷰를 요청한 지 약 두 달 만에 이뤄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친정 삼성과 계약했다. 2003시즌을 끝으로 삼성을 떠나 일본에서 만 8년을 보내고 대구 고향팀으로 돌아왔다.

▶난 삼성이라는 그라운드의 돌 하나 밖에 안 된다

이승엽의 시즌 중간 성적표는 기대이상으로 좋다. 28일 현재 타율(3할6푼4리), 최다안타(56개) 2위, 홈런(8개) 4위, 타점(30개) 5위 등으로 타격 전분야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그런 이승엽에게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승엽은 이런 관심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그는 "나는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일 뿐이다. 삼성이라는 큰 그라운드의 돌 하나 밖에 안 된다"고 자신의 위치를 낮추었다. 그래서 이승엽은 외부에서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 보다 골고루 여러 선수들에게 분산돼야 한다고 했다. 일부러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근거리에서 본 이승엽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는 "개인적으론 행복하다. 하지만 팀이 아직 톱니바퀴가 잘 안 맞을 때가 있다. 마냥 좋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승엽은 팀 후배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고 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그게 잔소리가 된다. 이승엽은 "넥센에 3연패를 당하니까 속에서 확 올라왔다. 내가 이렇게 밖에 못하나 하는 자기 반성 때문에 화가 났다"고 했다. 삼성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목동 넥센전에서 3연패했다.

이승엽에게 요즘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 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승엽의 그림 중 가장 넓은 부분은 팀 성적이 차지했다. 삼성은 이승엽이 없을 때 3차례나 우승했다. 2005~2006년, 그리고 지난해 챔피언이 됐다. 그는 "내가 삼성으로 돌아온 게 팀에 역효과 또는 마이너스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걱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이승엽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낮추려고 했다. 그는 2003년 홈런 56개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1995년 삼성을 통해 프로 데뷔한 후 2003년까지 홈런왕을 5차례 차지했다. 일본에서도 2005년 지바 롯데에서 재팬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비록 개인 성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만 8년을 버텼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인 것은 분명하다.

이승엽은 대개 스타 플레이어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까칠함의 겉멋이 없었다. 그는 유명인이 되기 이전과 이후가 큰 차이가 없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이승엽은 선수이기 이전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가정교육에서 그 뿌리를 찾았다. 지금의 이승엽을 키운 야구 지도자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인간 이승엽을 키운 건 부모, 그 중에서도 엄한 아버지(이춘광씨)였다고 한다. 이승엽은 "지금까지 커오면서 아버지에게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은 어길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면서 "아버지 말씀 중에 실력이 떨어지는 선배들에게 특히 잘 해라라고 한 말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 이춘광씨는 아들 이승엽이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됐지만 차를 사주는 데 인색했다. 프로 6년차였던 2000년 1월에야 아들이 그렇게 타고 싶다고 했던 외제 승용차를 사주었다. 그전에 이미 이승엽은 각종 시상식에서 MVP에 뽑혀 부상으로 차를 두 대 이상 받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아직 차를 탈 때가 아니다"라며 사주지 않았다.

▶꼬시는 일본야구 문화에 젖어들지 못했다

이승엽은 요즘 팀이 있는 대구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내(이송정씨)와 두 아들(은혁, 은엽)은 서울에 산다. 아들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아이 교육을 도맡고 있다. 나는 아들에게 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얘기도 많이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걱정이다"고 했다. 2005년 일본에서 태어난 첫째 은혁은 올해 7세. 둘째 은엽(2)은 최근 첫 돌이 지났다. 이승엽은 아내가 육아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했다. 그는 두 아들이 태어날 때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내가 죽다 살아났을 정도로 힘들어 했다. 일본 생활도 그랬다. 이승엽은 그라운드에서, 다른 가족들은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게 쉽지 않았다.

이승엽은 일본에서의 8년을 '패배'라고 못 박았다. 기자가 잘 했던 해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성공했던 시즌이 별로 없다.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패배로 본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다른 일본의 야구 문화에 젖어들지 못한 걸 그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야구는 미국야구 처럼 힘대 힘으로 싸우는 편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이승엽은 "일본야구는 타자들을 꼬셔서 제풀에 지치게 만든다"면서 "나는 고집을 부렸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만약 다시 일본 구단에서 영입제의를 받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일본 생각 전혀 없다. 8년 이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고 했다. 이승엽은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일본을 선택했었다. 그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미국은 일본 보다 더 힘들 것이다. 추신수를 보면 참 대단하다. 덩치가 산만 선수들과 싸워서 이긴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번 시즌 홈런왕은 강정호 아니면 김태균

홈런 선두 넥센 강정호(14개)는 최근 스포츠조선 10대1 인터뷰에서 결국 홈런왕은 이승엽이 될 가능성 높다고 했다. 이승엽은 강정호의 그말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강정호의 젊음이 부럽다"면서 "강정호 치는 걸 봤는데 물이 올랐다. 그리고 박흥식 코치님이 옆에서 강정호를 잘 도와줄 것이다. 또 김태균이 계속 치고 올라올 것이다. 그 친구는 타율 4할 이상 치는게 전부가 아니다. 무섭다"고 했다. 한화 김태균은 홈런 5개를 쳤다. 타율은 4할3푼5리다. 이승엽은 시즌 전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삼성)와 김태균이 홈런왕을 놓고 2파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최형우가 아직까지 홈런 1개를 못 치면서 사실상 예상이 빗나갔다.

이승엽이 홈런 56개를 칠 때 나이 27세였다. 9년 전 일이다. 강정호는 25세이고, 김태균은 30세다. 이승엽에 비해 둘은 한창 힘을 쓸 때다. 요즘 이승엽의 타구를 보면 젊었을 때 같으면 홈런이었을 타구가 담장 바로 앞에서 잡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만큼 세월은 천하의 이승엽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국야구는 이승엽이 없는 8년 동안 인기가 올라갔다. 올해는 관중 700만 돌파를 목표로 열기가 뜨겁다. 팬들은 많아졌다. 또 선수들의 플레이도 발전했다. 하지만 야구장 시설은 그대로다. 이승엽은 "대구구장을 새롭게 짓는다고 한 지가 10여년이 넘었다. 팬과 선수들은 좋은 쪽으로 변했는데 야구장만 그대로다"면서 "분명 문제가 있다. 한국야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시설이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승엽은 내년초 열릴 201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참가에 대해 "다소 뭔 얘기이기는 하지만 국가에서 부른다면 가겠다"며 태극마크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그는 2006년 제1회 WBC에서 한국이 동메달을 따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09년 WBC에는 팀(요미우리) 사정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승엽은 태극마크를 달고 베이징올림픽, 부산아시안게임, 시드니올림픽 등에서 보여준 많은 감동의 드라마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대구=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