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소문난 잔치는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았다.
25일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넥센-한화전은 메이저리그 매치라고 불렸다. 돌아온 메이저리거 김병현(넥센)과 준비된 메이저리거 류현진(한화)의 첫 선발 대결이라 주변의 관심이 컸다.
결국 이날 두 스타의 승부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두 선수 모두 다잡은 승리를 놓쳐야 하는 똑같은 쓴맛을 봐야 했다. 김병현은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첫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는 등 한결 업그레이된 모습을 보여주며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자랑했다. 류현진 역시 평소의 위력을 그대로 자랑했지만 중간계투가 버텨주지 못하는 바람에 분루를 삼켰다.
운이 따르지 않은 두 선수였지만 이들이 펼친 팽팽한 마운드 대결은 야구팬들의 흥미를 높여주기에 충분했다.
▶여유와 연민을 안고 빅매치를 맞다
경기 시작전 목동구장은 예상했던 대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후 3시부터 매표소 앞에 형성된 입장객들의 행렬은 경기가 시작된 뒤에도 좀처럼 줄지 않았다. 넥센은 이날 오후 7시10분을 기해 올시즌 7번째 만원 관중(1만2500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김병현-류현진의 빅매치가 가져온 평일 매진 기록이다. 뜨거운 분위기 일색이었던 관중석과 달리 양팀 덕아웃은 살짝 희비가 엇갈렸다. 넥센은 여유가 넘쳤다. 최근의 성적 상승세가 있는 가운데 김시진 감독이 김병현을 은근히 칭찬했다. 김 감독은 "병현이는 표현을 잘 안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선수 중에는 조금만 힘들고 아파도 엄살을 떨거나 웬만큼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김병현은 후자에 속해 메이저리그 출신다운 자세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류현진과 대결한다고 피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김병현이 며칠을 쉬고 등판하는 게 좋을지 관찰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라며 여유가 넘쳐보였다. 반면 한화 한대화 감독은 류현진이 참 안됐다며 연민의 정을 나타냈다. "류현진은 작년보다 구위도 좋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야수들이 멋진 수비로 조금씩 도와주면 더 힘이 나서 잘던질텐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김병현 한단계 진화하다
김병현의 이날 성적은 6이닝 6안타 2볼넷, 9탈삼진 2실점. 지난 18일 삼성전에서 올시즌 첫 선발 등판했을 때 성적(4⅔이닝 6안타 6탈삼진 3실점)보다 겉보기에도 향상됐다. 김병현은 이날 투구수 관리에 최적의 모습을 보였다. 18일 96개의 볼을 던졌지만 이날은 82개로 컨디션을 조절했다. 대신 소화한 이닝수는 1⅓이닝 더 많았다. 직구 최고속도 146㎞, 최저 130㎞로, 18일(133∼147㎞)에 비해 별 차이가 없었다. 구종 역시 직구를 중심으로 체인지업(17개), 슬라이더(14개), 커브(7개)의 분포를 이번 선발 등판때와 비슷하게 가져갔다. 특히 김병현은 위기관리에서 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1회초부터 살짝 불안감을 안겨줬다. 선두타자 강동우를 1루 땅볼로 처리하며 순조롭게 출발하는가 싶더니 한상훈과 장성호에게 연속 몸에 맞는 볼을 내줬다. 우완 사이드암이어서 그런지 좌타자 상대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결국 김병현은 자초한 실점위기에서 최진행을 상대하던 중 폭투를 던지는 바람에 선제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까지였다. 이후 김병현은 맞혀잡는 피칭을 중심으로 매이닝 삼진을 섞어가며 한화 타선을 압도해 나갔다. 김병현이 이날 24명의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절반을 범타 유도를 통해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플라이볼와 땅볼이 각각 6개로 고르게 분포됐다. 초반에 잠깐 위기를 초래했을 뿐
상대 타자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며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를 안정적으로 확보해 나갔다. 6회까지 류현진과의 투구수 대결에서 82개 대 105개로 압도했던 사실에서 보여주듯이 김병현은 경기운용 능력이 돋보였다. 게다가 김병현은 첫 선발 등판때 걸림돌로 지적됐던 퀵모션 1.30초의 우려도 덜어냈다. 당시 김병현은 보통 투수 선에서 도루를 허용하지 않으려면 퀵모션과 관련해 1.20초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바람에 도루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김병현은 2회 2사 1루 상황에서 강동우를 상대하던 중 절묘한 견제구로 1루 주자 오선진을 잡았다. 빨라진 퀵모션을 의식해서일까. 이후 한화는 한 차례도 도루를 시도하지 못했다.
▶류현진 억세게 운나쁜 사나이
류현진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해야 했다. 1회 김병현의 자멸 덕분에 선취점을 챙긴 류현진은 탈삼진 행진을 벌이며 신바람을 냈다. 2, 3회 5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4회까지 9탈삼진을 기록하며 김병현과의 자존심 대결에서 좀처럼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승리요건의 분수령이 5회에 그토록 애를 먹이던 실책성 플레이에 또 당했다. 5회 선두타자 강정호의 평범한 플라이성 타구를 잡으려던 하주석이 시야에서 타구를 놓치는 바람에 행운의 2루타로 내준 것. 정민철 투수코치가 급히 마운드로 올라와 류현진을 위로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 휸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허도환을 볼넷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폭투를 하는 바람에 동점을 헌납했고, 6회 역전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하지만 7이닝을 마친 뒤 맞은 8회초 김태균의 희생플라이와 최진행의 투런포 덕분에 4-2로 역전하자 승리투수 요건이 됐다. 다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바통을 넘겨준 마무리 바티스타가 9회말 다시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힘겹게 다잡았던 시즌 3승을 날리고 말았다. 7이닝 동안 10탈삼진 6안타 2볼넷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남은 건 아쉬움 뿐이었다. 목동=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