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리본과 혼연일체가 됐다. 물흐르는 듯 연기했다. 표정, 동작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실렸다. 리본 프로그램의 중요한 컨셉트는 '한국부채'다. 리본을 한국 고유 부채 모양으로 만들어 연기를 시작하더니, 리본을 다시 부채 모양으로 만들어 온몸을 감싸며 연기를 마무리했다. 창의적이고 아름다웠다. 클린 연기에 만족한 듯 방긋 웃었다. 환한 미소에 객석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8·세종고)가 1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타슈켄트월드컵에서 후프(28.050), 볼(28.250), 곤봉(28.350), 리본(28.250) 등 전종목 28점대를 기록하며 개인종합 5위에 올랐다. 전종목에서 상위 8위까지 출전하는 결선에 진출했다. 전종목 28점대는 최초, 전종목 결선행은 지난 4월 러시아 펜자월드컵(개인종합 4위)에 이어 두번째다.
특히 올시즌 월드컵시리즈 리본 종목에서 보여준 손연재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단 한차례도 결선에 오르지 못했던 취약종목이었다. 손연재는 올시즌 4차례 출전한 월드컵 리본 종목에서 모두 결선행에 성공했다. 5월 초 세계 리듬체조 강자들이 총출동한 불가리아 소피아월드컵에선 예선 5위로 결선에 올라, 무결점 연기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월 새로운 '부채' 프로그램을 받아들고 완성도과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 결과다. 동양적인 매력을 살린 독창적 프로그램에 혼신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현장 심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런던올림픽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 전종목 28점대는 고무적이다. 지난해 26~27점대에 그치던 점수가 1점 이상 올랐다. 에이스의 상징인 '28점대 선수'로 공인받았다. 들쭉날쭉하던 4종목의 키가 고르게 맞춰졌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다. 런던올림픽에서 리듬체조에 걸린 메달은 개인종합(8월11일), 단체전(8월12일) 단 2개다. 월드컵시리즈와는 달리 종목별 메달이 없는 만큼, 전종목에서 기복없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자신 있던 후프 종목은 안정적이다. 올시즌 새로운 곤봉, 리본 종목에선 선전하고 있다. 4차례 월드컵시리즈 대회 개인종합에서 각각 11위(페사로), 4위(펜자), 7위(소피아), 5위(타슈켄트)에 올랐다. 런던에서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리듬체조 최고 성적, 한자릿수 랭킹의 꿈에 근접했다.
사실 최고의 성적 4위를 기록한 펜자 대회와 톱5에 이름을 올린 타슈켄트 대회에는 러시아 최강자(카나에바, 드미트리에바, 콘다코바)들과 유럽의 강호들이 4~5명 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연재는 세계 18위권 국가의 선수들이 총출동한 A급 대회인 직전 소피아 대회에서도 당당히 7위에 올랐다. 3종목 결선에 진출하며 리본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월한 기량을 갖춘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0.1점대 안에 촘촘히 포진해 있다. 제아무리 에이스라 할지라도 실수 한번에 순위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숨막히는 포디움, 박빙의 승부에서 '독종' 손연재는 침착하게 자신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다. 손연재는 20일 오후 결선 무대에 나선다. 펜자월드컵 후프 동메달, 소피아월드컵 리본 동메달에 이은 월드컵 3연속 메달에 도전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