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도 쉽지 않다고 했다. 300만은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400만도 넘었다. 이쯤되면 '혁명'이다. 한국 멜로 영화 최초로 400만 관객을 돌파한 '건축학개론' 얘기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난 13일까지 400만 7776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 영화 영상이 불법유출되는 악재가 있었지만, 흥행에 제동을 걸진 못했다.
'건축학개론'의 성공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시선은 다양하다. "어떻게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의견부터 "탄탄한 시나리오와 적절한 캐스팅 때문에 개봉 전부터 성공을 예감했다"는 의견까지. 또 "개봉 시기를 잘 택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종합해보면 '건축학개론'은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 케이스다.
그런데 '건축학개론'의 성공 이유 중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남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기존 멜로 영화는 주로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해 만들어졌다. "남성 관객은 멜로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은 이 틀을 깼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이 영화를 예매한 남성 관객은 46%, 여성 관객은 54%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을 주제로 내세워 남성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 1990년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여기에 '첫사랑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한가인과 수지가 출연했다는 점은 남성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영화 홍보 과정에서도 남자배우(엄태웅, 이제훈)보다는 한가인과 수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건축학개론'은 "남성 관객을 잡겠다"는 역발상으로 멜로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건축학개론'을 통해 멜로영화의 흥행 공식이 확 바뀌게 된 셈이다.
뒤이어 나오는 멜로영화들 역시 '남심 잡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코믹 멜로물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17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홍보 단계부터 남자배우(이선균, 류승룡)가 아닌 여자배우(임수정)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가인과 수지를 통해 화제몰이를 했던 '건축학개론'과 유사하다. 여기에 이 영화는 남성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그린다. 임수정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지만, 입만 열면 불평과 독설을 쏟아내는 아내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리고 이선균은 그런 그녀와 이혼하고 싶지만 아내가 무서워 말도 못 꺼내는 소심한 남편 역을 맡았다. 아내와 헤어지기 위해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남성 관객을 잡아야 한다"는 멜로의 새로운 흥행 공식을 따르며 관객몰이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임수정의 얘기는 이렇다.
"'건축학개론'을 본 남성 관객들이 다들 자기 얘기라고 하면서 2차로 소주를 마신다고 들었다. 그리고 다들 수지를 그렇게 좋아하더라. 내 남동생도 수지가 좋다고 하더라. 여자가 봐도 눈에 들어오는데 남자들이 보면 오죽하겠냐. 이제 멜로영화도 남성 관객들을 노려야 할 것 같다. 남성들의 공감을 자극하고 과거를 회상하게끔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남성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