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운명을 알 수 없었다. 우승팀, 유럽챔피언스리그 본선진출팀, 강등팀 등 37라운드까지 결정된 게 없었다. 치열하고 격렬했던 순위 다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까지 이어졌다. EPL이 13일(한국시각) 영국 10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린 38라운드를 끝으로 9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혼돈의 시대'는 3분간의 극적인 드라마로 끝났다. 3분 사이에 웃고 우는 팀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맨시티와 퀸즈파크레인저스(이하 QPR), 아스널은 웃었고 맨유, 볼턴, 토트넘은 눈물을 보였다. 'EPL 극장'에서 상영된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44년만에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맨시티였다.
▶최종전에 결정된 6팀의 운명
얄궂었다. 서로 얽힌 운명을 풀 실타래는 최종전의 결과뿐이었다. 가장 관심을 끈 경기는 리그 우승팀이 결정되는 맨유-선덜랜드전과 맨시티-QPR전. 리그 2위 맨유(승점 86·27승5무5패·골득실 +55)는지역 라이벌인 선두 맨시티(승점86·27승5무5패·골득실 +63)와 치열한 우승다툼을 펼치고 있었다. 맨유는 20번째 우승을 위해 선덜랜드에 무조건 승리하고, 맨시티가 QPR과의 경기에서 패하길 기대해야 했다. 맨시티-QPR전보다 1분 먼저 종료 휘슬이 울린 선덜랜드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선 맨유가 1대0 승리를 거뒀다. 그 순간까지 2-2로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던 맨시티가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맨유의 극적인 역전 우승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맨유 선수들은 챔피언 세리머니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맨시티를 택했다. 종료 직전 아구에로가 극적인 역전골을 터트렸고 순간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맨유 팬들에게는 긴 침묵만이 흘렀다. QPR을 3대2로 꺾은 맨시티가 골득실차(맨시티 +64, 맨유 +56)에서 앞서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맨시티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과 이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맨시티 팬들은 그라운드로 뛰쳐 나와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축구 도시' 맨체스터에서 맨유에 가려 2인자에 머물렀던 맨시티가 44년만에 한을 푼 순간이다. EPL 잔류 티켓 1장을 놓고 다투던 볼턴은 같은 시각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스토크시티와의 최종전에서 무조건 승리하고 잔류 다툼을 벌이던 QPR이 패하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렸지만 스토크시티와 2대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2부리그로 강등됐다. 반면 맨시티에 패한 QPR은 어부지리로 1부리그에 잔류하는 환희를 맛봤다. 볼턴과 블랙번, 울버햄턴이 2부리그로 미끄러졌다. 레딩, 사우스햄턴, 블랙풀-웨스트햄전의 승리팀이 내년 시즌을 EPL에서 시작하게 됐다. 3위까지 주어지는 유럽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도 최종전에서 아스널의 차지가 됐다. 웨스트브로미치를 3대2로 꺾은 아스널(승점 70)은 풀럼을 2대0으로 제압한 토트넘(승점 79)에 승점 1 앞서 유럽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했다. 4위 토트넘은 예선 진출권을 얻었지만 6위 첼시가 뮌헨과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이마저도 무용지물이 된다.
▶아무도 웃지 못한 코리안리거
EPL의 코리안리거도 웃지 못했다. 박주영(27·아스널)은 최악의 한 시즌을 보냈다. 그라운드에 선 것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시즌 6경기 출전 1골. 몸 상태는 최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전경쟁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볼턴과의 칼링컵 16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주목을 끌었지만 이어진 마르세유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게 주전경쟁 탈락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후반기 들어 박주영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영국 현지 언론들은 올 초부터 박주영의 영입을 실패로 간주하면서 그가 아스널을 떠날 것이라고 점쳐왔다. 박주영이 아스널을 떠날 가능성은 꽤 높다. 아스널은 루카스 포돌스키(독일)를 영입하면서 공격의 나머지 한 자리마저 채웠다. 다음 시즌에도 주전 자리를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바라보고 있는 박주영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출전기회가 보장되는 팀을 찾을 만하다. 모나코에서 장기체류자격을 얻으며 병역 이행 시기를 늦춘 탓에 행보가 한결 편해졌다. 올 초 박주영 임대영입설이 나왔던 풀럼과 모나코 시절 이적 협상에 나서기도 했던 볼턴이 유력후보로 꼽힌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으로의 진출도 가능하다. 아스널 이적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박주영 본인이 한 시즌 더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칠 수도 있다. '한국인 최연소 프리미어리거' 지동원(21·선덜랜드) 의 빅리그 첫 시즌도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 맨유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끝내 출전 시계를 작동시키지 못했다. 리그 19경기 2골-2도움으로 마쳤다. 그의 출전시간 437분은 선덜랜드 공격수 가운데 가장 적은 출전시간이다. 주전경쟁에서 밀린 벤치 멤버였다. 능력을 보여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자신을 발탁한 스티브 브루스 감독의 경질 이후 주전 경쟁의 외로운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한 단계 성장했다. 첼시전 득점과 맨시티전에서 짜릿한 버저비터 결승골을 기록하는 등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서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정상에 선 두 한국인
반면 같은 시각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셀틱 파크에는 두 한국인이 환한 미소로 그라운드에 섰다. 2011~2102시즌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SPL) 최종전인 셀틱과 하츠의 경기가 끝난 뒤였다. 하츠를 5대0으로 완파한 셀틱은 리그 우승 축하를 위한 본격적인 파티를 열었다. 네 시즌만에 라이벌 레인저스를 제치고 차지한 우승이라 '축제' 그 자체였다. 6만여명의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셀틱의 '기-차 듀오' 기성용(23)과 차두리(32)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목에는 그 무엇보다 값진 우승 메달이 걸려 있었다. 생애 첫 리그 우승이었다. '기-차 듀오'가 함께 웃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