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걸 못나가게 만들 수 없잖아요."
최근 가파른 상승세에 대해 묻자 박경훈 제주 감독이 밝게 웃었다. 조심스러웠던 초반과 달리 자신감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12라운드가 지난 K-리그 최고의 변수라고 한다면 역시 제주다. 제주는 9경기 연속 무패(6승3무)의 신바람을 타며 선두 수원에 승점 1점을 뒤진 2위에 올랐다. 경기 내용을 보면 제주의 선전은 더욱 눈에 띈다. 경기당 2골이 넘는 25득점으로 16개 구단 중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파울수는 162개로 가장 적다. 높은 볼점유율,빠른 역습과 강력한 골 결정력을 앞세운 박경훈식 축구가 K-리그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골은 많이 터지고, 파울이 적어 경기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경기는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경기다. 제주팬들은 올시즌 축구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13일 강원전에 올시즌 제주월드컵경기장 최다인 9330명의 관중을 포함해 6번의 홈경기에서 평균 6224명이 몰렸다. 박 감독은 더 많은 관중동원을 위해 "2만 관중이 운집하면 머리를 오렌지색(제주의 상징)으로 염색하겠다"는 이색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제주는 올시즌 성적과 재미, 흥행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이럴때도 마냥 웃을 수 없는게 감독 마음인 모양이다. 박 감독은 '백업 멤버 관리'라는 새로운 과제를 얻었다. 제주의 올시즌 선전에는 두터워진 스쿼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제주는 산토스, 홍정호 정도를 제외하며 베스트11이 물갈이 되다시피 했다. 기존의 선수층에 새로운 수준급 선수가 더해져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울산-서울-포항간의 '지옥의 3연전' 동안 송진형 홍정호 두 '공수의 핵심'이 빠졌음에도 1승2무의 선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경호 오승범 한용수 오반석 등 백업 멤버들이 좋은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백업 멤버'들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자 박 감독도 고민에 빠졌다. 박 감독은 "다른 팀 입장에서 보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주전급 이외의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서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어 "아직은 초반이라 컨디션 관리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즌 중반이 넘어가면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베스트 멤버를 빼자니 스플릿시스템 하에서 한경기 한경기 느끼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일단 박 감독은 연습 경기와 미니 게임을 통해 계속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실전같은 훈련으로 베스트 멤버들에게는 자극을, 백업 멤버들에게는 감각을 주고 있다. 박 감독은 "다 큰 프로선수에게 면담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훈련장에서 보여주면서 꾸준히 컨디션을 유지하는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