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3루타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기록이다.
두산 임재철이 10일 SK와의 홈게임에서 9회에 끝내기 3루타로 승리를 불렀다. 2사 1,2루에서 우중간 펜스쪽으로 향한 타구를 SK 중견수 김강민이 역모션 캐치를 시도한 끝에 놓쳤다. 9대8로 두산의 극적인 역전승. 끝내기 홈런 보다도 짜릿한 끝내기 3루타였다.
▶임재철 끝까지 3루를 밟았다
끝내기 3루타가 나오기 위해선 두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일단 주자 상황과 연결된다. 1,2루에 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승리에 필요한 2점째 주자가 홈에 들어오기 위해선 무조건 루타수 3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만약 2,3루에 주자가 있었고 모두 홈을 밟아 경기가 끝났다면 끝내기 2루타가 됐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임재철이 타구가 빠지는 걸 확인한 뒤에도 계속 달려서 3루를 밟았다는 사실이다. 이날 현장에 파견된 KBO 기록위원회의 김제원 팀장은 "임재철이 3루를 밟은 덕분에 끝내기 3루타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경우엔 임재철의 기록은 끝내기 단타가 될 수도 있었다. 2사 상황이라 주자들은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었고, 임재철이 타구를 확인한 뒤 2루에 도달하기도 전에 좋아서 껑충껑충 뛰었다 치자. 그리고 두번째 주자가 홈을 밟은 뒤 동료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물을 뿌리며 축하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럴 땐 임재철의 공식 기록은 단타다. 2루를 지나 3루에 닿기 전에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졌다면 끝내기 2루타가 공식 기록이 됐을 것이다.
김제원 팀장은 "끝내기 3루타는 나도 거의 못 본 기록 같다. 대부분은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가 좋아서 3루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주사 2,3루에서 끝내기 2루타가 단타로 끝나는 경우다"라고 말했다.
▶헐크 이만수 감독의 2초 변신
임재철은 차분하게 3루를 밟은 뒤 김민호 3루코치와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덕분에 끝내기 3루타가 공식 기록이 됐고, 본인의 통산 16호째 3루타도 성립됐다.
SK 중견수 김강민이 마지막 순간에 캐치에 성공하는 듯 했다. 이때 SK 덕아웃의 풍경이 독특했다. 이만수 감독이 아웃을 확신한 듯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려 포효를 했다. 덕아웃에 있던 멤버 가운데 오직 이만수 감독만이 액션을 취했다. 그런데 타구가 그라운드로 떨어지는 걸 본 뒤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 '헐크'로 변했다가 씁쓸한 얼굴로 돌아오는데 2초쯤 걸렸을까.
사실 대부분의 감독 입장에선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감정 표현이 드러나는 걸 꺼리고, 게다가 섣불리 좋아했다가 실망하는 표정이 되는 걸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장면이었고 그래서 이만수 감독의 2초 세리머니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한편으론 이런 모습도 프로야구의 재미라고 볼 수도 있다. 모든 감독들이 덕아웃에서 근엄하게만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만수 감독은 평소에도 소속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하면 '월드컵 16강 액션'을 보여주곤 한다.
임재철의 끝내기 3루타는 통산 몇호째인지 집계하기도 어렵다. 끝내기 공식 기록은 안타와 홈런으로만 구분돼있기 때문에 역대 모든 기록을 일일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임재철은 침착하게 3루를 밟아 소중한 기록을 추가했고, 이만수 감독은 솔직한 감정 표현으로 야구팬들에게 웃음을 줬다. 끝내기 3루타로 인해 나온 풍경이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