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 보기 싫어서 1루 안왔지!"
10일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뭐니뭐니 해도 이승엽, 홍성흔 두 친구의 1루 베이스에서의 상봉이었다.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삼성의 경기 4회말 롯데 공격 때 홍성흔이 볼넷으로 출루, 1루로 걸어나간 후 '절친' 이승엽과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과연 두 사람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경기를 마친 홍성흔은 "1루로 나가는데 승엽이가 보여 너무 반가웠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올시즌 한국무대에 복귀한 이승엽이 1루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지난 2일 대구 두산전 이후 오랜만에 1루수로 선발출전해 두 사람의 극적인(?) 상봉이 이뤄지게 됐다.
홍성흔은 1루에 다다른 후 이승엽의 엉덩이를 툭 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이승엽이 글러브로 입을 가린채 홍성흔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중요한 대화였길래 그렇게 입을 가리면서까지 얘기를 건네야 했을까. 알고보니 36세 친구들의 유치한 대화였다. 이승엽이 "너 나 보기 싫어서 1루 안왔지"라고 말한 것이다. 2회 삼진을 당한 홍성흔에게 일격을 날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고 있을 홍성흔이 아니었다. 홍성흔은 "너는 나 보기 싫어서 계속 1루에 안나오냐"라고 받아쳤다. 팀 사정, 그리고 어깨 부상 때문에 지명타자로 출전하고 있는 이승엽의 허를 찌른 것이다. 안그래도 올스타전 투표에서 이승엽이 지명타자로 후보 등록을 할 것이라는 소식에 "나랑 겹치는 지명타자 말고 1루수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던 홍성흔이었다.
서로간에 대화에 모처럼만에 밝게 웃은 두 사람이었다. 1차 대화 후, 리드를 했던 홍성흔이 베이스에 귀루하자 또 다시 2차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도 목격됐다. 홍성흔은 "그 다음부터는 공개하기 힘든 정말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웃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친분은 아구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이승엽이 한국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 중 한 명이 홍성흔이었다. 물론 사적으로 만나고 통화도 했지만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감흥은 또 달랐던 것이다.
물론 후폭풍도 있었다. 이승엽과 대화를 나눈 홍성흔은 곧바로 상대 배터리의 견제에 런다운에 걸려 아웃되고 말았다. 경기 후 일부 언론에서는 '경기에 집중해야 할 홍성흔이 수다를 떨다 집중하지 못해 아웃됐다'는 보도가 나왔고 홍성흔은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일단 찬스에서 아웃된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너무 죄송하다"고 운을 뗀 홍성흔은 "솔직히 승엽이와 얘기를 나눈 것은 아무 상관 없었다. 히트앤드런 사인이 나 지시대로 뛰었는데 상대 배터리가 이를 간파, 볼을 뺐다. 내 주력이 빠르지 않아 런다운에 걸린 것 뿐"이라며 억울해했다. 홍성흔은 "정말 반가운 마음에 얘기를 나눴던 것이다. 팬들께서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누구를 만나도 1루에서 절대 웃고, 긴 얘기를 주고 받지 않겠다. 경기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