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가 홈런 많이 쳐서 오히려 좋아요."
박병호는 트레이드가 선수에게 주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 선수다. 우타 거포 갈증에 시달리던 LG의 희망과도 같았지만, 매년 유망주에 머물렀다. 팀의 기대는 컸고, 본인에겐 압박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31일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못 쳐도 좋다. 삼진 먹어도 좋다'는 전폭적인 지원 아래 환골탈태했다. 그것도 부동의 4번타자다.
최근 들어 4번타자에 대한 통념이 깨지고 있지만, 보통 4번타자는 '홈런'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시즌 전 많은 야구관계자들은 박병호를 홈런왕 후보로 꼽았다. 이승엽 김태균 등 돌아온 해외파와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에 가렸지만, 박병호의 홈런왕 등극이 가능하다고 내다본 이들도 많다. 상위권 팀이 아닌, 넥센에 있기에 다른 이들보다 부담감 없이 홈런포를 터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박병호는 10일까지 4홈런으로 홈런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팀 동료 강정호가 9개를 쏘아올리며 1위를 달리고 있고, '신개념 4번타자' LG 정성훈이 8개로 뒤를 잇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거포라고 볼 수 없는 둘에게 밀려있는 상태다.
하지만 홈런에 대한 조급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병호는 "홈런은 언제든 몰아칠 수 있는 것"이라며 "(강)정호가 나보다 많이 쳐서 좋다. 난 오히려 지금 타격감이 좋지 않은데 타점이 많이 나오는 게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정말이다. 박병호는 20타점으로 홍성흔(23타점) 강정호(22타점)에 이어 박석민 정성훈과 함께 공동 3위다. 해결사형 4번타자인 홍성흔 정성훈처럼 타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박병호는 "지난해엔 주자가 나가있을 때, '삼진을 먹으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드리지도 삼진이 많아 찬스가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데 올시즌엔 내가 삼진 먹어도 뒤에서 정호가 다 해결해준다. 그게 달라진 점"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친정팀 LG전에서만 8타점을 몰아쳤다. 25경기 중 5경기일 뿐이었지만, 전체 타점의 40%를 LG전에서 기록했다. 박병호에게 물었다. 친정팀을 상대로 강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늘상 하는 "LG라고 특별히 의식하는 건 없다"는 대답이 들릴 줄 알았다.
하지만 박병호는 "LG전에서 유독 타점 찬스가 많이 났다. 테이블세터가 찬스를 워낙 많이 만들어줬다. 동료들이 LG에 강한 것 아닌가"라며 "오히려 타격감은 지난 주말 광주 KIA전 때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땐 찬스가 거의 없었다. 감이 안 좋았는데도 오히려 LG전서 타점이 많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4일부터 열린 KIA와의 3연전 때 박병호는 12타수 5안타(4할1푼7리) 1타점을 기록했다. LG와의 3연전에서는 10타수 3안타(3할3푼3리) 5타점이다. 역설적인 결과다.
박병호는 지난해까지 심리적 압박감이 선수에게 미치는 안좋은 영향을 모두 보여줬다. 하지만 올시즌엔 다르다. 생애 첫 '풀타임 4번타자'가 된 박병호에게 없는 딱 한가지가 바로 부담감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