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는 많은 속설이 있다. '위기 뒤엔 찬스가 온다'는 말도 수많은 속설 중 하나다.
10일 목동구장. 넥센과의 시즌 5번째 경기를 치른 LG는 아마 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했을 것이다. 만났다 하면 피튀기게 싸우는 두 팀의 '엘넥라시코'는 이날 4개 구장 중 가장 빠른 2시간41분 만에 끝났다. 경기 내용은 풍부했지만, 이렇다 할 득점은 나오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책으로 자멸한 LG 탓도 있었다.
속설을 증명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LG는 0-1로 뒤진 3회말 1사 후 정수성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1루수 최동수와 투수 이승우의 움직임이 엇갈리며 나온 내야안타.
이승우는 곧바로 장기영에게 중전안타를 맞고 1,3루 위기를 허용했다. 하지만 LG엔 달라진 유격수 오지환이 있었다. 이택근의 타구를 침착하게 병살플레이로 연결시켰다. 타구를 잡고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송구하는 스탭이 완벽했다.
4회초가 시작되자마자 이진영의 동점 솔로포가 터졌다. 한차례 속설을 증명한 셈이다. 하지만 LG 타선은 상대 선발 김영민을 더 흔들지 못했다.
동점에 만족한 뒤 맞은 4회말, 1사 1루서 또다시 유격수 오지환의 결정적 수비가 나왔다.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져나가는 타구를 다이빙캐치해 병살타로 만들어냈다. 몸을 날리는 순간 타구는 한차례 크게 튀었다. 하지만 오지환은 타구의 높이를 정확히 예측했고, 공은 정확히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위기 뒤엔 찬스가 온다'는 말은 팀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다. 찬스를 살리지 못한 팀은 기가 죽고, 위기를 막아낸 팀은 자신감이 생긴다. LG로서는 분위기를 가져올 절호의 찬스였다.
5회초 예상했던대로 2사 1,3루 찬스가 왔다. 타석에는 앞서 잘 맞은 타구가 두차례나 라인드라이브로 잡힌 불운의 타자 이대형. 이번엔 기대할 만 했다. 또다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였지만, 외야로 쭉 뻗어나갔다. 하지만 넥센 중견수 정수성은 빠른 발을 이용해 한참을 뛰어가 공을 잡아냈다. LG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호수비였다. 6회에도 선두타자 이진영이 좌중간으로 향하는 안타를 날렸지만, 2루까지 뛰다 정수성-강정호-지석훈으로 이어진 매끄러운 중계플레이에 아웃됐다. 이번에도 정수성의 타구 판단과 송구가 좋았다.
결국 LG는 두차례의 상대 호수비에 말려들고 말았다. 호투하던 선발 이승우는 6회 야수들의 실책 3개에 1실점하며 고개를 떨궜다. 잘 해오던 오지환이 압박수비를 펼치다 바운드를 맞추지 못해 실책으로 결승점을 허용했고, 2루수 서동욱은 견제구에 좌익수의 송구까지 놓쳤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속절없이 무너졌다.
LG와 정반대로 넥센은 위기를 이겨내며,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 LG가 넥센의 기를 살려준 셈이 됐다. '위기 뒤엔 찬스가 온다'는 말은 한 쪽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위기 뒤 온 찬스를 살리지 못하면, 곧바로 패배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