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의 에이스가 등판하면 왜 동료 타자들은 기대만큼 치지 못하는 것일까.
'국보투수' 출신 KIA 선동열 감독이 그럴 듯한 원인분석을 내렸다.
선 감독은 9일 대전 한화전에 앞서 전날 한화 류현진의 아쉬운 등판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류현진은 8일 KIA전에서 7이닝 4피안타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에서 1점 밖에 내지 못하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지난달 19일 LG전에서도 9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하고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를 두고 한화 한대화 감독은 "류현진이 나오면 희한하게 타선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진이에게 되레 미안하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한 감독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KIA 윤석민도 류현진과 비슷한 처지다. 자신이 에이스 출신이기에 류현진과 윤석민을 보면 측은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어 선 감독은 에이스를 받쳐주는 타선 지원이 잘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두 가지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방심과 압박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선 감독의 진단이다.
우선 동료 타자들의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는 것이다. 에이스가 나오면 최대 3점 정도만 뽑아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1∼2점만 뽑으면 된다고 마음이 너무 편해진 나머지 방망이를 마구 휘두르게 된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나도 현역 시절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1대0으로 이긴 경기보다 0대1로 패한 경기가 더 많은 걸로 기억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화를 소개했다. 해태(현 KIA) 시절 타선의 지원을 못받아 패하고 난 뒤 한 번은 동료 선-후배들에게 따지듯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안치는거요? 못치는거요?"
이 때 돌아온 대답은 막강 에이스가 나오면 1점만 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너무 편하게 먹어서 그런지 잘 안맞더라는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안도감이 방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어 선 감독은 "한편으로 마음은 편하면서도 에이스가 나왔으니까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게 마련이다"면서 "이런 부담감이 심리적으로 압박되는 결과를 초래해 잘 안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찌보면 상충된 두 가지 심리가 에이스라는 이유때문에 묘하게 얽혀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분석이다.
한편 선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고독한 에이스들의 해결책도 제시했다. "나의 운이 이것 밖에 안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괜히 타자들 탓하면 마음만 상하고 다음 경기에 지장을 줄수 있으니 긍정 마인드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남 탓 하기에 앞서 자신의 피칭을 복기하면서 조금이라도 미흡했던 게 무엇인지 끄집어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대전=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