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몰라(This will be my final game)."
대전의 외인 공격수 케빈(벨기에)이 5일 수원과의 경기(2대1 대전 승)를 앞두고 팀 관계자들에게 한 말이다. 케빈은 경기 전까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9경기동안 한골도 넣지 못했다. 시즌 개막전까지 대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공격수로 꼽혔지만, 막상 시즌이 들어서자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위협적인 장면은 커녕, 기본적인 트래핑도 되지 않는 그에게 '최악의 외국인 선수', '먹튀'라는 오명이 쏟아졌다. 유상철 대전 감독은 부쩍 자신감이 떨어진 케빈에게 맞춤형 훈련을 실시했다. 연습경기에서 골맛을 봤지만 실전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유 감독은 한그루 남궁도의 부상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케빈에게 기회를 줬다. 케빈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수원전을 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케빈은 전반 22분 김형범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슛으로 리그 마수걸이 골을 기록했다. 후반 48분에는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이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재밌는 우연이 있다. 부진을 거듭하다 수원전서 반전의 계기를 만든 대전의 외국인 선수는 케빈이 처음이 아니다.
에릭은 수원전 보약을 먹은 대표적 대전의 외국인 선수다. 79일간 골맛을 보지 못하던 에릭은 2008년 7월 13일 수원과의 홈경기(1대0 대전 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그날의 히어로가 됐다. 프랑스리그를 경험한 대형 공격수라는 찬사 속에 대전 유니폼을 입은 에릭은 전년도 용병인 데닐손, 브라질리아 등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수원전 골로 인해 마음고생을 씻었다.
2007년 대전의 6강 플레이오프진출을 이끈 슈바도 수원전 한방의 추억이 있다. 슈바는 2007년 10월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전(1대0 대전 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극적인 6강행을 이끌었다. 전년도에 비해 활약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은 슈바는 이 골 하나로 몸값을 해냈다.
대전과 수원은 규모나, 투자, 위상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대전-수원전은 '자줏빛 징크스' 등 많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며 K-리그 대표적인 경기로 떠올랐다. 수원전서 유독 활약을 보이는 외국인 선수 징크스도 대전-수원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