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외국인투수 러다메스 리즈는 또다른 우주에서는 좋은 마무리투수로서 척척 잘 막아내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년간 영화 혹은 드라마 소재로 많이 쓰인 '평행우주론'에 따르면, 그쪽 우주에서는 LG 선발투수 주키치는 경기 막판에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선 리즈가 또한번 화재를 냈다. 26일 잠실 넥센전 9회에 등판, 2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볼넷 3개를 내주며 3실점, 패전투수가 됐다. 지난 13일 홈 KIA전에서도 등판하자마자 한국신기록인 16구 연속 볼을 기록하며 4타자 연속 볼넷으로 체면을 구겼던 그였다.
▶몸쪽 공 제구도 됐던 리즈, 어디갔어!
리즈는 26일 현재 표면적으론 세이브 1위(5세이브)다. 하지만 2패가 있고 방어율은 무려 13.50. 사실 세이브를 거둔 경기에서도 불안한 모습이 꽤 나왔었다.
지난해 3월 당시 방송 해설위원 자격으로 일본 오키나와 캠프를 방문한 KIA 이순철 수석코치는 "리즈는 변화구 제구가 하나도 안 된다. 그래도 국내리그에서 꽤 던질 것 같다. 신기하게도 몸쪽으로 빠른 공을 넣을 줄 알더라. 공 자체가 워낙 빨라서 그것만으로도 승부가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뛸 때 최고 162㎞짜리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던 리즈다. 굳이 그런 스피드까지 나오지 않아도, 시속 148㎞ 수준의 포심패스트볼을 안쪽과 바깥쪽으로 제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또한 몸쪽을 던진다는 건 배짱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지난해 선발투수로 뛰었을 때만 해도 11승13패, 방어율 3.88로 괜찮았다. 타선 지원만 적절히 이뤄졌다면 승수가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올해 마무리로 보직이 바뀐 뒤 제구력을 잃었다. 가운데로 들어가는 포심패스트볼이 몇 개 없다. 26일 경기에서도 직구 제구가 원활치 않자 변화구를 던지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리즈는 "미국에서 마무리투수로 던진 적이 없기 때문에, 불펜에서 짧은 시간내에 팔을 어떻게 푸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마무리투수 최고의 덕목인 '두둑한 배짱' 차원에서 문제점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되는 게 맞을 듯하다.
보통 구단 프런트는 "외국인투수가 성격 못됐어도 좋으니 공만 잘 던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리즈는 심성이 정말 착한 투수다. 하지만 급박한 세이브 순간에 아직 심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3일 KIA전의 16구 연속 볼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 같다.
▶오승환과 리즈, '더 콘트라스트'
시범경기에서 리즈는 155㎞짜리 직구도 선보였다. 하지만 정규시즌 개막후 세이브 요건에 등판하면 148~149㎞에 그쳤다. 그나마 제구도 안 됐다. 본인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마무리 오승환과 대비된다. 오승환은 25일 롯데전에서 팀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⅔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본인의 역대 최다 실점. 이 역시 트라우마가 될 법도 한 결과였다. 하지만 오승환은 하루 뒤인 26일 롯데전에서 무난하게 세이브에 성공했다. 시속 153㎞ 포심패스트볼을 팍팍 꽂았다. 마치 '칠테면 쳐봐라' 하는 식이었다.
투수의 최고 친구는 역시 강력한 직구다. 오승환은 하루전 심란한 성적표를 쥐었지만, 24시간 뒤에 본인의 강점을 그대로 활용했다. 반면 리즈는 그렇지 못했다. 최고시속 160㎞를 던질 수 있는 투수가 140㎞대 후반의 제구도 안 되는 어정쩡한 공으로 일관했다. 자신감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오승환이 심리적으로도 강한 투수라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겉으론 화려한 '돌직구'를 뿌리지만, 마음 속으론 늘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게 그의 강점이다. 반면 리즈는 안과 밖이 모두 불안했다.
리즈 대신 당장 또다른 마무리투수를 낙점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리즈를 선발로 돌리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다른 외국인투수를 찾는 것도 지금으로선 어렵다. 문제는 리즈가 그 뒤에 올라오는 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환경을 물려준다는 점이다. 26일 경기에서도 우규민이 2점차의 무사 만루에서 등판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부분에서 지난해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LG다. 하지만 '리즈 리스크'가 너무 큰 게 현실이다. 어떻게든 리즈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애써온 코칭스태프가 중대한 고민에 처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