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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용 감독 "20년 채우고 더 큰 그림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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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 만으로 17년. 매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 챔피언결정전 승률 87.5%. 우승 청부사. 이 모든 것이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이번 2011~2012시즌 HN농협 V-리그에서도 우승컵은 삼성화재의 기업 광고 문구처럼 '당연히' 신 감독의 품에 안겼다. V-리그 출범 후 8회째이자 실업리그 포함 16회째 우승이다. 동시에 2008~2009시즌 우승 이후 5시즌 연속 우승의 위업도 달성했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한 현역 최고의 프로 감독이다. 신 감독을 경기도 용인 팀숙소에서 만났다. 선수들에게 훈련을 지시한 뒤 인터뷰에 응한 신 감독에게 리더십의 비밀을 물었다.

▶코트위의 잔소리꾼

신 감독은 "올 시즌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면서 말을 꺼냈다. 그만큼 우승이 어려웠다. 삼성화재 주축 선수들은 한 살을 더 먹었다. 석진욱 여오현 등 수비의 핵심 선수들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겼다. 반면 다른 팀들은 날이 갈수록 버거워졌다. 특히 자신이 아끼는 제자 신영철 감독이 이끄는 대한항공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정규리그에서 삼성화재는 대한항공에 2승4패로 열세였다.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늘 수 밖에 없었다.

잔소리가 많아졌다. 11년을 함께한 여오현이 "감독님, 잔소리 정말 많아지셨어요"라는 얘기를 할 정도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선수들이 알아서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김상우 신진식 김세진 등이 팀을 떠났다. 계속된 우승으로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없었다. 팀이 예전같지 않았다. 하나하나 챙겨야 했다. 신 감독은 "원래 내가 말이 많지 않다. 그런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팀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감독의 잔소리는 유독 고참 선수들을 향했다. 할 말이 있으면 고참 선수들을 조용히 부렀다. 그리고는 훈련과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지시했다. 젊은 선수들에게 바로 얘기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컸다. 고참 선수들도 잘 따랐다. 솔선수범했다. 매년 드래프트로 들어온 선수들은 "고참 선수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팀은 처음이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에 있는 선수들부터 열심이니 선수단 전체가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 이기려는 감독은…

신 감독과 고참 선수들의 관계 아래에는 서로간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석진욱이 좋은 예다. 석진욱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생각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무릎을 다쳤다. 2010~2011시즌에 나서지 못했다. 연봉이 대폭 삭감됐다. 자존심이 상한 석진욱은 은퇴하겠다고 했다. 신 감독은 석진욱을 불렀다. 긴 얘기가 필요없었다. 그저 "은퇴하겠다고? 어디서 배운 얘기야. 그냥 사무실 들어가서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와"라고만 했다. 석진욱 역시 신 감독의 말에 따랐다. 올 시즌 석진욱은 정규리그 32경기, 챔피언결정전 4경기에 출전해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후 신 감독은 석진욱에게 "우승하니까 네 자존심도 살지 않았느냐. 격려금도 받고 얼마나 좋으냐"라고 했다. 석진욱은 빙긋이 웃음으로 답했다.

여오현도 마찬가지다. 여오현은 올 시즌 구단과 연봉을 놓고 줄다리기했다. 연봉 협상 마지막날까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신 감독이 나섰다. 여오현에게 "그만하면 됐다. 들어가서 사인하고 와라"고만 했다. 여오현도 역시 곧장 사인했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여오현은 팀 수비에 핵심으로 활약했다. 고참 선수들과 신 감독이 믿고 따른 결과다.

신 감독의 선수 사랑은 특별하다. 신 감독은 마음 속에 '선수 이기려는 감독은 쪼다'라는 말을 새겨놓았다. 선수를 이기려고 하면 할수록 잡음과 앙금만 남는다는 것이 신 감독의 생각이다. 서로 이용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신 감독은 "정규리그든 챔피언결정전이든 선수들의 역량은 100% 빼내는 쪽이 승리한다. 그것을 위해 선수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의 역량은 이용하되 그 기준은 공정하다. 감독도 사람인지라 예쁜 선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밖으로 표현하는 순간 팀은 와해된다. 신 감독은 아예 그럴 가능성을 없앴다. 선수는 물론이고 코칭스태프가 집에 찾아오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괜한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7년간 삼성화재 감독을 맡으면서 선수들이 집에 온 것은 2008~2009시즌 우승컵을 들고난 뒤 딱 한번이었다. 그것도 선수들이 '신 감독의 집에서 술먹고 싶다'고 적극 요청한 결과였다. 신 감독은 "그 때 이놈들이 우리 집에 뭐 가져갈 것이라도 있는지 방마다 다 열어보고 구경하더라"고 했다.

요즘은 더욱 예민해졌다. 선수단 가운데 딱 한 명만은 집에 들낙날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위가 된 박철우다. 이 때문에 신 감독은 박철우에게 "네가 선수 은퇴할 때까지 우리는 장인과 사위가 아닌 감독과 선수의 관계다. 집에서는 팀 얘기 하지 말고 팀에서는 집 얘기 하지마라"고 못 박았다. 박철우 역시 신 감독의 뜻에 따라 철저하게 선수로 처신하고 있다.

▶20년 채우면 더 큰 그림 그리고파

만으로 17년, 햇수로는 18년째 팀을 맡고 있는 신 감독에게는 세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삼성화재에서 감독으로 20년을 채우는 것이다. 창단 감독으로 20년 부임은 당분간 깨기 힘든 기록이다.

나머지 하나는 20년 채울 때까지 챔피언결정전에 올라가는 일이다. 1995년 삼성화재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 1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나섰다. 그중 14번을 우승했다. 이제 두 시즌만 더 올라서면 대기록을 달성한다. 물론 그 때도 우승이 목표다.

마지막 하나는 감독 은퇴 후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행정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뒤 단 한달도 배구와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배구판 돌아가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선수로, 지도자로 기른 경험과 역량을 더 큰 판을 그리는데 보태고 싶다. 신 감독은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 팬들, 관계자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그런 배구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용인=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