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다룬 영화 '건축학개론'이 흥행 신바람을 내고 있다.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난 18일까지 301만 3308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28일 만의 '쾌거'다.
올 들어 개봉한 한국영화 중 '댄싱퀸',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이어 네 번째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의 300만 돌파만 콕 집어 '쾌거'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멜로 영화는 극장가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5년 개봉한 '너는 내 운명'(305만 1134명, 영화진흥위원회 공식통계기준)과 2006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313만 2320명) 정도만 눈에 띈다. 로맨틱 코미디에 공포를 더한 '오싹한 연애'(300만 6131명)가 있었지만, 정통 멜로는 아니었다.
영화계에선 멜로 영화의 한계 관객수를 200만 정도로 보기도 했다. 눈에 띄는 화려한 볼거리가 없고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탓에 관객 동원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건축학개론'이 이 한계를 깨트렸다. 첫사랑을 추억하게 만드는 1990년대 이야기로 관객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15년 만에 만나게 된 첫사랑 남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삐삐, CD플레이어 등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이 등장한다.
극장가 비수기였기 때문에 강력한 라이벌 영화가 없었다는 점과 한가인 수지 이제훈 등의 스타파워가 작용했다는 것도 흥행에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건축학개론'은 외화 '배틀쉽'에 1위 자리를 내주기 전 20일 동안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건축학개론'의 선전으로 "멜로 영화도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에 따라 영화계는 장르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내 극장가는 범죄, 스릴러, 블록버스터 등 일부 장르에 편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강력한 액션과 선 굵은 연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여배우들의 설 자리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멜로 영화는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또 이 영화를 통해 한가인 수지 이제훈 등 주연배우들은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초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한가인은 영화 배우로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걸그룹 미쓰에이 출신의 수지도 눈에 띈다. 배우로서 대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엔 KBS의 새 월화극 '빅'에도 캐스팅됐다. 지난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남우신인상을 휩쓸었던 이제훈은 다시 한번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수지와 이제훈의 활약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건축학개론'의 흥행을 이끈 것은 엄태웅-한가인 커플이 아니라 이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이제훈과 수지라는 말도 나온다. 첫사랑의 설레는 감성을 지닌 극 중 캐릭터를 그만큼 잘 소화해냈다. 충무로 아역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성인배우들을 보조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던 아역들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급을 맡은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은 "처음엔 비수기인데다가 멜로 영화이기 때문에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탄탄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고, 여성 관객뿐만 아니라 남성 관객들도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300만 관객을 넘어선 것 같다"고 밝혔다.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