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없는 박용호 데이?'
11일 부산-서울전은 부산 구단이 정한 '박용호 데이'였다. 서울 출신 부산 센터백 박용호의 사진이 매치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했다. 사인회도 대성황이었다. 경기 전 100여명의 팬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그러나 정작 박용호는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팬들도, 선수 본인도 내심 기다렸던 경기다. 지난해 맞트레이드된 서울 출신 부산 원톱 방승환과 부산 출신 서울 미드필더 박희도는 각각 선발과 교체로, 나란히 그라운드를 밟았다. 유독 박용호만 관중석에서 마음 졸이며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왜 그랬을까.
지난 2월 부산 이적 당시 FC서울과 맺은 계약 옵션 조항 때문이다. 2000년 안양LG 시절 서울 유니폼을 입은 박용호는 광주상무에서 뛴 2년을 제외한 10년을 서울맨으로 살았다. 서울로서는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데다 주장까지 역임한 서울 출신 스타플레이어가 하루아침에 상대팀 수비의 핵으로 나서는 것이 달갑지 않은 상황.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베테랑' 박용호가 절실했던 부산은 앞뒤 가리지 않고 옵션 조항에 동의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박용호의 부재는 많이 아쉬웠다. '이경렬-박용호-에델'의 스리백 라인은 '이경렬-에델-정민형'으로 운용됐다. 에델이 데얀을 집중마크했다. 고육지책으로 미드필더 정민형이 수비라인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설상가상 정민형이 전반 종료 직전 피로골절 부상으로 업혀나가면서 우려했던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안익수 부산 감독은 후반전, 기존의 스리백을 과감히 포기하고 4-1-4-1 포메이션을 택했다. 0대0 무승부로 경기가 마무리되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전술 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개막 이후 6경기에 선발출전해 부산 특유의 단단한 스리백 라인을 이끌었던 박용호 역시 서울전 결장에 아쉬움을 표했다. "서울전을 기다렸다. 꼭 나가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매치데이 매거진 공식 인터뷰에서도 "서울전이 많이 기다려진다. 내가 열심히 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서울 팬, 부산 팬들 모두에게 보여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안 감독은 "프로라면 이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정팀'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선진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성남에서 서울로 이적한 에이스 몰리나도 같은 사례였다. 이적 당시 계약서에 성남전에는 출전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었다. 약속대로 성남과의 첫 원정전에는 뛰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마지막 홈경기 성남전에서 몰리나는 그라운드에 나섰다. 서울측이 마지막 홈경기인 만큼 팬들을 위해 베스트 선발진을 가동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성남이 취지에 전격 동의했다. 이날 몰리나는 1골1도움으로 맹활약하며 서울의 3대1 승리를 이끌었다.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성남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지만, 승패를 떠나 K-리그 팬들에겐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부산측은 "다음 맞대결 때는 서울 측에 박용호를 풀어달라고 제안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