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의 3루타는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프로야구에서 베이스간 거리는 약 27.43m다. 타격을 한 뒤 3루까지 가려면 82.29m를 달려야한다. 전 베이스를 돌아 홈까지 되돌아올 경우엔 109.72m를 뛰게 된다. 일반인들이 3루타에 해당하는 82.29m를 베이스러닝으로 뛰면 과연 몇초가 걸릴까.
지난 8일 프로야구에선 3개 구장에서 3루타가 등장했다. 인천 문학구장에선 SK 임 훈이 우익선상으로 빠져 외야 파울라인을 벗어나 굴러가는 3루타를 터뜨렸다. 대구구장에선 LG 오지환이 좌중간 3루타를 기록했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두산 최준석이었다. 공식 프로필상 115㎏인 최준석은 넥센과의 경기에서 우중간 3루타에 성공한 뒤 '나, 마음만은 홀~쭉하다!'라고 외치는 듯 포효했다. 모두 역전타가 되거나 승리를 부른 중요한 안타였다. 3루타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난 케이스였다.
▶최준석 13초20으론 어림없는데
이날 세명의 타자들이 '땅' 하고 타격하는 순간부터 3루에 도달하는 시점까지 시간을 재봤다. 물론 완벽하게 측정할 순 없었지만, 최준석은 대략 13초20 정도가 나왔다. 오지환은 10초98 정도였다. 임 훈의 케이스에선 12초 정도가 측정됐다.
역시 '무거운' 선수인 최준석이 가장 느렸다. 최준석의 이날 3루타는 개인통산 4호째였다. 그러니까 3루타와 영 인연이 없는 선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코치들은 "최준석이 몸집이 커서 느리긴 하지만 일단 탄력이 붙으면 체구에 비해 빠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날 최준석이 기록한 13초20은 원론적으로는 3루타가 될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정도 시간이 걸리면 보통은 3루에서 넉넉하게 태그아웃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최준석은 성공했다.
상대 외야수들이 전진수비를 했다가 타구가 사이로 빠졌다. 그 바람에 뒤로 달려가 공을 수습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덕분이다. 모 구단의 코치는 "최준석이 3루까지 13초가 넘게 걸렸다면 보통은 살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외야 중계플레이가 원활하지 않았거나 외야수들이 전진수비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지환의 10초98이 의미하는 것은
오지환은 좌중간 3루타를 기록했다. 대구구장이 작은 구장은 아니지만, 보통 좌중간으로 빠진 타구로 3루까지 가기는 어렵다. 그가 3루까지 걸린 10초98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코치의 설명이다. "오지환의 경우엔 본래 빠른 선수인데다 치는 순간부터 작정하고 열심히 달렸다. 삼성쪽 외야 수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삼성쪽 중계플레이도 깔끔했지만 오지환이 진작부터 열심히 뛴 결과 좌중간 타구인데도 박빙 승부 끝에 3루타가 나왔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임 훈도 오지환 못지 않은 스피드로 알려져있는데 왜 12초가 나왔을까.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임 훈은 처음 타구를 치고 뛰쳐나갈 때는 3루타를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3루타가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선상 타구가 나왔으니 2루까지 충분히 갈 수 있는 상황으로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타구가 구석으로 흘러나가는 상황을 본 뒤 "어?" 하면서 그때부터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지환에 비해 3루까지 더 긴 시간이 걸렸다.
▶3루타, 그리고 베이스러닝의 미학
배트를 휘두르고 3루까지 가려면 베이스간 거리로만 계산하면 82.29m다. 그런데 직선이 아닌 다이아몬드를 뛰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곡선 주로가 등장한다. 실제로 뛰면 82.29m에 비해 훨씬 먼 거리를 달리게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베이스러닝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곡선주로를 최대한 줄이는 주법이 필요한 것이다. 팀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로 SK와 같은 팀들은 과거부터 '3루타 훈련'을 많이 해왔다고 한다.
다시 코치의 설명이다. "주로 우중간 타구일 때 3루타가 나올 것이다. 타자는 치고 나가면서 타구를 보고 곧바로 판단할 수 있다. 이때 처음부터 3루타를 염두에 둘 경우엔 1루에서 턴을 작게 한다. 2루를 앞두고 턴을 키웠다가 2루를 돌고 나서 3루까지는 최단 직선코스로 갈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훈련한다." 얼핏 하찮은 것 같지만, 바로 이같은 베이스러닝 스킬에 따라 수많은 아웃카운트가 왔다갔다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야구선수가 3루까지 어느 정도 시간내에 도착해야 빠르다는 평가를 들을까. 보통 11초20~11초30 이내면 굉장히 빠른 것이라 한다. 치는 순간부터 곧바로 달린 케이스다. 이 기준은 달라질 수도 있다. '딱' 하는 순간부터 재느냐, 한발 뗄 때부터 측정하느냐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오지환 케이스가 전형적인 '3루타 러닝'의 모범사례인 셈이다.
▶홈 TO 홈, 14초30이면 빠르다
타구를 치고 2루까지 갈 경우엔 8초 이내를 기준으로 잡는다. 따라서 수비 파트에서도 2루타성 타구가 나왔을 때 8초 이내에 중계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를 점검한다고 한다. 1루에서 3루까지 뛸 때는 리드가 있고 탄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6초70이 기준점이다.
홈에서 출발, 홈까지 돌아오는 훈련에선 14초30 안쪽이면 굉장히 빠른 것이라 한다. 보통 느린 선수도 16초 안으로는 다들 들어온다.
때론 이럴 때가 있다고 한다. 2루 주자가 안타때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드는 케이스다. 3루코치는 상대 외야수가 공 잡는 타이밍을 보고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판단해 팔을 돌렸다. 그런데 주자가 3루를 돌 때 턴이 커지는 바람에 홈에서 아웃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턴을 작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주자가 미리 뛰어갈 길을 머리속으로 그려놓는 게 왜 필요한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일반팬들이 경기후 홈팀 선수들이 남아서 홈에서 출발, 홈까지 돌아오는 훈련을 하는 걸 구경할 기회는 잘 없다. 만약 볼 수 있다면, 그건 훈련이 아니라 정신무장을 위한 '얼차려'일 가능성도 있다. 야구선수들에게도 홈에서 홈까지 특정 시간내에 들어오는 훈련은 힘들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에 홈에서 예외없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면, 그건 '얼차려'가 맞을 것이다. 한번씩 땅바닥에 쿵쿵 엎어지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요즘은 잘 없지만, 과거 김응용 감독 시절에 실제로 본 일이 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