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봐야 인생을 안다'고 하는데, 넥센 2루수 서건창는 '눈물 젖은 2군 밥을 먹어봐야 야구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것 같다. 23세, 많지 않은 나이에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교야구 명문 광주일고 출신인 서건창은 학창시절 제법 쓸만한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으나, 그를 바라보는 프로팀들의 시선을 싸늘했다. 고향팀 KIA에 가고싶었는데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다. 어렵게 프로에 첫 발을 디뎠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그해 어깨 부상 속에 1군 경기 1타석에 나서 삼진으로 물러난 게 기록의 전부다.
유망주가 차고 넘치는 LG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2009년 8월 전력 외 통보를 받은 서건창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병역의무라도 빨리 마치자는 생각에서 일반병으로 입대했다. 지난해 9월 병역의무를 마쳤지만 갈 곳이 없었다. 제대 직후인 지난해 10월 젊은 팀 넥센이 선수 테스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문을 두드렸다. 지원자 20명 중 유일하게 넥센 유니폼을 입은 게 서건창이다. 2년 만에 다시 문이 열린 것이다.
1m76에 80kg, 연봉 2400만원. 발이 빠르고 타격센스가 있어 작전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타자로서 감독이 좋아할만한 자질을 고루 갖췄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늘 수비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핸디캡 속에서도 서건창은 시범경기 10게임에 출전해 2할4푼1리(29타수 7안타)를 기록, 가능성을 알렸다.
이번 시즌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전 2루수 김민성의 백업. 김시진 감독은 발이 빠른 서건창을 대주자나 대타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개막전, 더구나 선발 출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민성이 시즌 개막을 눈앞에 둔 5일 자체 청백전에서 수비 중에 발목을 접질렸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였다. 프로 5년 만에 처음으로 7일 두산과의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데 이어, 선발 9번-2루수로 나섰다.
0-1로 뒤진 5회 초 2사 만루에서 중전안타를 터트려 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상대 투수는 지난해 15승을 거둔, 올시즌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꼽히는 니퍼트. 1군 무대 3번째 타석에서 나온 첫 안타이자, 첫 타점이었고, 넥센의 6대2 승리를 이끈 역전 결승타였다. 김시진 감독은 수비도 안정적이었다고 했다.
발목이 안 좋은 주전 2루수 김민성은 1군 엔트리에 남아 있으나 당분간 출전이 어려울 수도 있는 상태. 백업 서건창에게 특별한 2012년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