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의 귀환.'
찬 바람이 여전히 쌩쌩 불지만 연극계에는 따뜻한 봄이 왔다. 오태석 윤호진 장 진 등 국내 공연계를 대표하는 거장 연출가들이 속속 무대로 돌아와 관객과 후배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극작과 연출을 맡아 여전한 창작력을 과시하고 있는 '극의 마법사' 오태석(72)이 포문을 열었다. 70년대 이후 극단 목화를 이끌며 우리말의 살가움속에 인생과 역사와 문명의 상처와 치유를 담아냈던 그가 처음으로 가면극에 도전했다.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마늘 먹고 쑥먹고'.
국립극단이 올해 야심차게 진행 중인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단군신화 속 웅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그 참을성 없던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다시 먹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몸에 아직 곰의 DNA가 남아있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지럽고, 복잡하고, 좁아터진 한반도에 살고 있던 웅녀 할멈은 어느 날, 손녀 순단과 여행을 결심한다. 드넓은 만주벌판을 찾아서,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러 길을 떠난다.
24명 전 출연진이 가면을 쓴다. 이 가면들은 1300년 전 삼국유사와 지금을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관객 스스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실타래를 풀 수 있게 하는 기호이다. 현실과 환상, 역사와 설화가 뒤집어 지고, 엉켜서 새로운 이야기 실타래가 만들어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조선팔도를 넘어 저 먼 대륙까지 유람하며, 게임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색색의 구슬을 꿰듯 오태석 특유의 서사 판타지를 완성한다. 22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서 오는 21일 개막하는 '단막극 연작'에도 쉽게 만나기 힘든 중견 연출가 3명이 포진해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의 윤호진이 오랜만에 고향인 연극계로 돌아온다. 김수미 작가와 호흡을 맞춰 철새도래지에 모인 새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짝찾기' 행태를 우화적으로 풍자한 '새-깃털의유혹'을 선사한다. 뮤지컬 연출가답게 노래와 군무를 상당히 활용한다.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으로 현재 대학로를 대표하는 간판 연출가 박근형은 최치언 작가의 '꽃과 건달과 피자와 사자'을 올린다. 가장 예쁘고, 가장 폼나고, 가장 맛있고, 가장 사나운 것을 조합하여 의식과 무의식,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독특한 구조의 작품으로 새로운 연극적 형식을 실험한다. '벽속의 요정'의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보성연쇄살인사건과 화학적 거세법이라는 이슈를 모티브로 한 '방문'(장성희 작)을 선보인다. 성범죄와 관련된 살인을 한 노인을 찾아온 요원들의 취조를 통해 죄와 악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세 편의 단편을 한 무대에서 만난다. 5월13일까지.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맹활약해온 재주꾼 장 진도 지난해 말 '연극열전' 개막작으로 호평받았던 '리턴 투 햄릿'으로 다시 '리턴'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분장실. 마냥 화려해 보이는 무대 위 모습과 달리 때론 애처롭기까지 한 배우들의 일상이 장진 특유의 엇박자 유머와 소박하지만 진한 감동으로 펼쳐진다. 13, 14일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