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이 아니라도 좋다. 찬스에서의 집중력이 중요하다.
시범경기가 끝나갈 무렵 오릭스 오카다 감독은 이대호를 비롯해 중심타자들을 향해 쓴소리를 한 바 있다. 홈런이 터지지 않으니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올해 일본 정벌에 나선 이대호는 시범경기에서 단 한 개의 홈런도 날리지 못했다. 오릭스의 4번타자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달 30일 시즌 개막 이후 팀이 3연패를 당했을 때도 이대호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 커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정확이 맞히는 타격으로 일본 투수들에게 적응하는게 더욱 중요하다"며 흔들림을 보이지 않았다.
이대호의 자신감이 명분을 얻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니혼햄과의 원정경기. 이대호는 4번 1루수로 선발출전해 5타수 3안타 1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일본인들 특유의 의심과 비아냥을 깨끗이 날려버리는 호쾌한 타격으로 오카다 감독의 신임을 다시 얻었다.
오릭스 이대호가 일본 진출 이후 첫 멀티히트 게임을 펼쳤다. 한꺼번에 안타를 3개나 몰아치며 오카다 감독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홈런을 치지는 못했으나, 매타석 니혼햄 투수들의 혼을 빼앗는 정교한 타격으로 4번타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상대의 철저한 코너워크와 다양한 볼배합을 극복하며 팀승리를 이끌었다.
1회 2사 1루서 맞은 첫 타석은 탐색전이었다. 상대 왼손 선발 야기와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6구째 123㎞짜리 바깥쪽에 걸치는 체인지업에 서서 삼진을 당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야기의 싱커와 직구 위주의 볼배합을 유심히 지켜보며 다음 타석에 대비했다.
1-0으로 앞선 3회 두 번째 타석. 이대호는 무사 1,2루 찬스에서 야기의 직구를 공략, 깨끗한 적시타를 날리며 타점을 올렸다. 역시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7구째 133㎞ 바깥쪽 직구를 살짝 잡아당겨 좌익수 앞으로 땅볼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대호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3-0으로 앞선 5회에는 1사후 야기의 3구째 낮게 떨어지는 공을 잡아당겨 좌익수쪽으로 직선안타를 만들어냈다. 볼카운트가 0-2로 유리했지만, 3구째 122㎞ 싱커를 가볍게 공략해 안타를 터뜨렸다.
7회에는 1사 1루서 오른손 모리우치의 135㎞ 몸쪽 꽉찬 직구를 잡아당겨 좌익수쪽으로 라인드라이브 안타를 추가했다. 9회 우익수플라이로 물러난 이대호는 9회말 수비때 교체됐다. 이날 이대호는 후속타 불발로 득점은 올리지 못했으나, 찬스를 살리고 연결시키는 4번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며 타율을 3할(20타수 6안타)로 끌어올렸다.
이대호의 맹타를 앞세운 오릭스는 4대2로 승리하며 3연패 후 2연승을 달렸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