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최고 별들이 대학 캠퍼스에 떴다. 수업을 빼먹고 달려온 학생들도 있었다. 또 그들 중에는 사인을 받기 위해 스타가 광고 출연했던 제품을 챙겨온 팬도 있었다. 스타들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롯데 매력남 홍성흔은 준비해온 사자성어로,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삼성)은 개그로 한방을 날렸다. 메이저리그 124승의 박찬호(한화)는 진솔한 입담을 과시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2년 프로야구 개막(7일)을 앞두고 마련한 미디어데이가 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렸다. 올해 700만 관중 달성을 위한 붐을 조성하기 위해 장소를 파격적으로 대학 캠퍼스로 잡았다. KBO가 이 같은 미디어데이를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올해로 8회째를 맞았지만 대학 캠퍼스는 처음이다. 또 미디어데이 행사 최초로 공중파 채널이 생중계했다. 팬들과 함께 하기 위해 사전 신청을 받아 700명을 초청했다.
▶샴푸통에 사인하는 진풍경까지
참가 선수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가대항전이 아니면 모으기도 힘든 박찬호 김병현(넥센) 이승엽이 한 자리에 함께 했다. 또 홍성흔, 기아 윤석민, 두산 김현수, SK 정근우, LG 이병규가 구단을 대표했다. 또 이번 시즌 첫 선을 보이게 되는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하주석(한화) '산체스'라는 별명으로 인기가 높은 김성호(롯데) 등 신인 선수 8명과 구단 사령탑도 나와 새 시즌 각오를 밝혔다.
스타들은 팬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가져온 준비물에 깜짝 놀랐다. 야구공은 물론이고 대학 교재, 노트북,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부산 출신인 곽창렬씨(성균관대 06학번)는 몇 해전 홍성흔이 광고 출연했던 한 샴푸 제품에 사인을 받았다. 한 여학생은 두꺼운 회계원리 교재에 사인받았다. 30년간 야구팬이라고 한 안성호씨(53)는 사인을 가장 먼저 받기 위해 집이 있는 안산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 왔다고 했다. 열혈 야구팬들은 행사 시작 3시간 전인 오전 11시부터 스타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토크왕 홍성흔 사자성어로 기선 제압
입담이 가장 빛난 홍성흔은 토크왕으로 꼽을 만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온 사자성어 '세류성해(가늘게 흐르는 물이 바다를 이룬다)'의 자세로 이번 시즌을 임하겠다고 해 큰 박수를 받았다. 홈런타자 이대호가 일본 오릭스로, 선발 장원준이 군입대해 전력 공백이 있지만 더 열심히 해 큰 일을 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롯데의 강점은 무서운 팬들이다. 사직 야구장에 더 많이 와서 의자를 부숴주었으면 한다"면서 "2년 안에 이대호 생각이 안 나게 하겠다"고 했다. 국내 프로야구가 처음인 박찬호는 "시범경기를 통해 너무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면서 "껄끄러운 선수를 한 명 꼬집기는 어렵다. 다 어렵다. 한화 김태균의 기량은 메이저리거급이다. SK 정근우는 출루하면 너무 왔다갔다해서 정신이 없다"고 했다.
긴장한 탓에 말이 자주 꼬여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던 이승엽은 토크쇼 시간에 인기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 "다람쥐"를 불쑥 내뱉어 모두를 웃겼다. 또 그는 까다로운 선수로 선배 박찬호를 꼽았다. 그 이유가 재밌다. 박찬호가 공을 던질 때 '윽'하는 소리를 질러 주눅이 들어 공을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홍성흔도 맞장구를 쳤다.
성균관대 97학번(법학과)인 김병현은 동문 후배들 덕을 봤다. 그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을 아끼는 대신 손동작을 자주 보냈다. 그런데도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졌고, 한 여학생이 "선배님, 밥 사주세요"라고 소리치자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이번 시즌 첫 선을 보이는 8명의 신인 선수들도 선동열 감독, 김광현(SK) 윤석민 김현수(두산) 등을 자신들이 넘어서야 할 라이벌로 꼽는 당찬 각오를 밝혔다.
▶너무 길어 늘어졌다
이번 행사는 1·2부로 총 2시간 동안 열렸다. 식전 팬사인회 및 포토타임까지 합치면 3시간이었다. 참신한 기획으로 행사장을 찾은 팬들은 볼거리가 풍성했다. 하지만 2부 토크쇼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져 지루했다. 또 김진욱 두산 감독을 무대 중앙에 세워 놓고 갑자기 노래를 하라고 부추기는 진행은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재미를 찾다보니 감독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아슬아슬한 질문까지 등장한 것도 옥의 티였다. 노주환 기자·이원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