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운이 좀 따라오는 것 같아요."
구자철(23·아우크스부르크)은 가장 '핫'한 코리언 유럽리거다. 1월 마지막날 볼프스부르크를 떠나 임대로 아우크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은 구자철은 8경기에서 3골-2도움을 올렸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치른 22경기에서 1도움에 그친 것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환골탈퇴'다. 구자철은 스포츠조선과의 단독 전화인터뷰에서 "사람에게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볼프스부르크에서 힘들었을때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했던 것이 이제 성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런게 운인 것 같다"며 웃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편안한 모습이었다. 개인적 성향이 강했던 볼프스부르크에 비해 가족적인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단다. 독선적인 펠릭스 마가트 볼프스부르크 감독과는 대화조차 어려웠는데, 요스 루후카이 감독과는 장난까지 치는 사이다. 선수들과도 많은 미팅을 갖는다. 중앙의 호소가이-바이에르 듀오와는 짧은 패스를 추구하는 스타일이 비슷해 특히 호흡이 잘맞는다. 팬들도 강등권에 있던 팀의 상승세를 이끈 '구세주' 구자철에 대해 뜨거운 호흥을 보내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구자철이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쁜 기억만 줬던 볼프스부르크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줘서 통쾌한 기분이 있을 것 같다'고 물었다. 현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볼프스부르크에서 기회가 없었다고 했는데 나는 나름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볼프스부르크에서 사이드에서 뛰면서 참 실수를 많이 했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이 경험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나를 영입한 이유 중 하나가 사이드에서도 뛸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만약 볼프스부르크에서 사이드에서 뛰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볼프스부르크에서의 경험이 소중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머쓱했다.
분위기를 바꿨다. 첫 골의 기분이 궁금했다. 구자철은 2월 18일(이하 한국시각) 레버쿠젠 전에서 꿈에 그리던 분데스리가 첫골을 넣었다. 이 골부터 구자철의 상승세가 이어졌다. 첫 골 넣었을때의 기분은 한마디도 '후련함'이었단다. 그는 "사실 레버쿠젠과의 경기 전까지 두려움과 압박감이 컸다. 축구를 하면서 사실 골을 넣야겠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나선 적은 없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주로 봤기에 경기를 잘 풀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득점왕 이후 골을 못넣으면 경기를 잘해도 비난 받았다. 그래서 볼프스부르크 이적 후 계속 조바심이 있었다. 득점 없이 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찰나에 이적을 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었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마음속에 있던 스트레스가 풀렸다"고 했다. 그 뒤 얘기가 더 재밌었다. 구자철은 "첫 골을 넣은 후에 '두번째 골이 안나오면 어떻게하나'하는 새로운 불안감이 생기더라. 당시 몸도 안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골 타이밍이 좋았다. 자신감이 더 필요한 시점에 터져서 다행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감이 붙은 구자철은 지난달 17일 마인츠전 골 이후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의 호조를 보이고 있다.
구자철이 잘나가자 한국 축구계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올해는 런던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이 있는 해다. 구자철은 두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강희 A대표팀 감독도 그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이번달 직접 독일로 날아간다. 구자철은 올림픽과 A대표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올림픽과 A대표팀 두 팀 모두 중요하다. 경험을 통해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을 잘 알고 있다. 불러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 그래서 시즌 후 특별한 계획을 잡지 않고 준비에 전념할 생각이다"고 했다.
걱정도 있었다. 그는 "시즌 후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진다. 물론 A대표팀에 선발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비시즌에 한국에 넘어왔다가 스페인전을 위해 다시 유럽으로 나가야 한다. 경기 후 다시 역시차로 카타르전 치러야 하는 강행군이 이어진다"고 했다. 사실 구자철은 이번 시즌 내내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뛰고 있다.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등 3년간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강행군을 펼친 그다. 구자철은 "체력적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무릎이나 발목에 피로가 많이 쌓인 것은 사실이다.몇달 푹 쉬지 않는 이상 상태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할 생각이다"고 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며 5개의 공격포인트를 목표로 했다. 8경기만에 목표를 이뤘다. 아우크스부르크의 분데스리가 잔류라는 목표도 가시권에 있다. 조심스럽지만 더 좋은 활약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K-리그 4년차가 됐을때 경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잘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좋은 플레이할 수 있었다. 이제 독일 무대에 대한 적응을 어느정도 마친것 같다. 경기도 계속 뛰고 있는만큼 더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구자철의 말이 믿음직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