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도입된 스플릿시스템은 전쟁이다. 팀당 44경기를 치른 뒤 우승팀이 결정된다. 30경기 후 9~16위가 소속된 하위 그룹으로 떨어지면 1부리그 잔류를 장담할 수 없다. 2부리그 추락은 곧 팀 해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스플릿시스템으로 인한 긴장감이 K-리그 4라운드만에 그라운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위권 팀간의 대결에서도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켜 K-리그를 보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는 나란히 3패를 기록한 인천과 대전의 '단두대 매치'가 열렸다. 예전 같으면 관심 밖에 있던 15위 인천과 16위 대전의 하위권 매치. 그러나 두 팀의 경기는 챔피언결정전 못지 않은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취재를 하러 온 언론사만 해도 20여개, 케이블 TV 생방송 중계도 3군데나 붙어 치열한 취재 경쟁이 벌어졌다. 스플릿시스템이 가져온 변화였다.
경기 전부터 양팀 감독은 속내를 감췄다. "단두대매치 한두번 해봤나. 큰 부담은 없다. 기다리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허정무 인천 감독), "인천전이 중요한 경기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시즌이 아직도 40경기 이상 남아있다. 한 경기 승리를 위해 무리한 선수 기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유상철 대전 감독)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경기 수준은 이들의 순위를 뛰어 넘었다. 추운 날씨 탓에 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단두대매치'였던만큼 먼저 실점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지배했다. 전반은 탐색전이었다. 양팀 모두 수비에 치중했다. 승부는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경험의 차이가 승패의 추를 기울게 했다. '빅 매치'를 많이 치러 본 2002년 한-일월드컵 태극전사 설기현-김남일 콤비가 인천의 승리(2대1 승)를 이끌었다. 설기현은 후반 8분 김남일 어시스트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골을 선사했다. 설기현은 후반 16분 페널티킥골까지 넣으며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들썩거리게 했다. 대전 신인 1순위 허범산의 만회골은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인천-대전전은 경기력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K-리그 31~44라운드 하부리그 경기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자칫 김이 빠져 긴장감 '제로'로 진행될 수 있는 하위권 팀간의 경기라도 동기부여만 확실하다면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유럽 축구리그의 '강등 매치'에서 볼 법한 기쁨과 절망이 공존하는 그라운드의 풍경. K-리그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스플릿시스템이 K-리그에 가져다 준 선물이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