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바짝바짝 마르던데요."
6년만이다. 지난해 잠시 잠실 마운드에 올랐지만, 그땐 월요일에 진행된 2군 경기였다. 2006시즌 후 1군 무대에서 사라졌던 LG 신재웅이 돌아왔다. 두산으로 보상선수 이적, 군입대 후 접한 방출통보. 그리고 신고선수로 LG에 재입단, 1년만에 정식선수 등록. 다시 돌아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운드에 서는 기분도 남달랐다.
신재웅은 오키나와에 연습경기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첫 등판이었던 지난달 11일 주니치와의 연습경기서 1이닝을 삼진 3개로 끝냈다. 한 타자당 공 4개씩만을 던졌을 뿐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쓰리케이(3K)라니까요, 쓰리케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고, 신재웅은 연습경기 내내 중용됐다. 긴 이닝을 던지며 선발로도 테스트를 받았다.
신재웅이 삼진쇼를 선보인 2월11일, 이날은 연습경기임에도 주니치팬들을 포함해 많은 관중이 현장을 찾았다. 당시 그는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던지니 너무 좋다. 마운드에 올랐을 때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같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20일 잠실구장. 신재웅은 0-1로 앞서있던 6회말 마운드에 올랐다. 평일임에도 많은 관중이 현장을 찾은 상황. 하지만 일본에서 즐겼던 느낌과는 분명히 달랐다. 5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와서였을까. 많은 생각과 함께 입이 조금씩 말라왔다. 연신 침을 묻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첫 타자 오재원부터 만만찮았다. 오재원은 무려 7개의 공을 파울로 커트해내며 12구까지 던지게 만들었다. 결과는 볼넷. 출발부터 좋지 못했다. 신재웅은 경기가 끝난 뒤 "2구째 공이 파울 선언될 때 사실 1루 땅볼로 아웃될 줄 알았다. 그때부터 말린 것 같다"며 "볼넷 나오면 힘이 빠지지 않나. 그래서는 안됐는데 이후 타자들과 승부할 때도 오재원 타석이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여기에 견제구를 놓친 1루수 서동욱의 실책까지 나오며 주자는 2루까지 갔다. 희생번트가 이어져 1사 3루 상황. 신재웅은 임재철을 3구만에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문제는 3루 주자 오재원이었다. 깊지 않은 타구기에 충분히 승부해볼 만한 상황. 공을 잡은 손인호는 어깨도 좋고 송구가 정확한 편이다. 하지만 송구시 손에서 공이 살짝 빠졌다. 송구는 홈플레이트 오른쪽으로 향했고, 결국 1-1 동점을 허용했다. 실책 탓에 비자책점으로 기록됐지만, 신재웅에겐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실점이었다.
신재웅은 두산의 중심타선, 김현수와 김동주도 상대했다. 김현수에게 중전안타를 내줬지만, 김동주를 2루수 플라이로 잡고 이닝을 마쳤다.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김동주 선배를 내야플라이로 잡아낸 건 기분 좋았다"고 했다.
그는 올겨울 떨어지는 변화구의 필요성을 느껴 서클체인지업을 연마했다. 이날 딱 하나 던졌는데 그 공으로 김동주를 잡아낸 것. 실전에서 통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신재웅의 직구 최고구속은 142㎞. 대부분 140㎞ 부근의 공이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하기에 구속은 더 올라올 것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신재웅의 올시즌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다. 선발자원이 우르르 빠져나간 바람에 오키나와에서 선발로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오는 24일 롯데와의 원정경기에도 선발등판이 예정돼 있다. 5이닝 정도를 던지면서 선발로서 완급조절 능력을 테스트받을 예정이다.
20일 경기에서 LG는 왼손투수 6명만을 기용해 10이닝을 비자책으로 막았다. 지난해 이상열이 홀로 불펜을 지킨 것과 달리 올해는 왼손자원이 풍족해졌다. 신재웅이 선발로 가는 게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 정작 신재웅은 "어디서 던지겠다는 욕심은 없다. 팀에서 맡겨주는 자리에서 던지면 된다"며 "오늘 우리팀의 좋은 투수들이 많이 나왔다.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고 했다.
지난 겨울 신재웅을 다시 1군 투수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건 '자신감'이었다. 이날 마운드에서도 '과거 1안타 완봉승의 영광'이나 '날 방출시킨 두산'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오직 1군 타자들을 잡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만이 있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