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치고, 잘 던지고도 기분이 별로였다?
삼성 최형우와 LG 우규민은 17일 시범경기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양팀의 첫번째 시범경기서 최형우는 3타수 1안타 1타점, 우규민은 두 타자를 상대로 ⅔이닝 무실점하며 깔끔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기록은 좋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고.
최형우는 이날 4번-좌익수로 선발출전했다. 삼성은 첫경기부터 이승엽-최형우-박석민의 클린업트리오를 가동했다. 이승엽의 가세로 지난해보다 배로 업그레이드된 중심타선이었다.
이승엽은 1회초 무사 1,2루 찬스에서 시범경기 첫 타석을 맞았다. 타석에 들어설 때부터 환호성이 시작됐다. 정규시즌을 방불케 한 1만8000여명의 관중들은 "이승엽!"을 연호했다. 하지만 결과는 1루 땅볼로 아웃.
다음 타자인 최형우는 대기타석에서 타석을 향해 움직였다. 그때만 해도 관중석에서 이승엽을 연호하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뒤에도 끊이지 않는 "이승엽!" 소리에 다소 풀이 죽었다.
18일 경기 전 만난 류중일 감독은 이에 대해 "형우한테 혹시 승엽이가 아웃되고 들어와도 기죽지 말라고 얘기했다. 근데 형우가 '그건 상관없는데…'라면서도 관중들이 계속 이승엽을 외치니까 기분이 좀 상한 모양이다"라며 껄껄 웃었다. 그는 "그래도 작년에 홈런왕까지 했던 선수인데, '최형우! 와~!' 하는 건 없고 계속 '이승엽!'을 외치니 그럴 만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류 감독은 강력한 중심타선을 구축하고 있는 둘에 대해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LG 덕아웃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경찰청 제대 후 처음 등판한 우규민이었다. 우규민은 전날 경기서 3-8로 뒤지고 있던 9회 1사 후에 마운드에 올랐다. 앞서 9회초 시작과 함께 등판한 리즈가 이승엽에게 공 4개를 던져 삼진으로 돌려세운 상황. 마지막 헛스윙을 이끌어낸 직구는 155㎞를 기록했다. 의기소침해 있던 LG 관중석을 뜨겁게 만든 강속구쇼. 김기태 감독의 화끈한 팬서비스였다.
뒤이어 등판한 우규민은 팬서비스 2탄이었다. 2009시즌을 마치고 경찰청에서 군복무한 뒤 처음 돌아온 잠실구장. 그의 모습을 궁금해 했던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불펜에서 몸을 풀면서 기대감에 한껏 부푼 상태. 관중석의 환호성을 듣고 "아, 내가 잠실에 돌아왔구나" 싶은 기대감까지 들었다고.
하지만 마운드에 오른 뒤 자세히 들어보니 관중들이 외치는 건 자신이 아닌 리즈였다. 이미 리즈가 덕아웃으로 들어간 뒤에도 리즈의 이름이 계속 나왔다.
우규민 역시 삼진과 3루 땅볼로 두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냈지만, 팬들이 리즈를 외치던 그 순간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선 잠실 마운드가 좋았나보다. 우규민은 "다음엔 제가 팬들 앞에서 더 잘 던지면 되죠"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