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원더스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고양시 국가대표야구훈련장. 고양의 검정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사이에 메이저리그 텍사스의 훈련복을 입고 있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주인공은 투수 남윤희(25). 고교 졸업 후 텍사스 유니폼을 입으며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한 꿈을 이어가던 그가 독립구단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남들은 비웃겠지만 나에겐 큰 꿈이 있다."
남윤희는 신일고 재학 시절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혔다. 좌완투수라는 이점에 140km를 훌쩍 뛰어넘는 강속구를 뿌리는 것이 큰 매력이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구단들까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남윤희는 2006년 두산의 1차 지명을 거부하고 텍사스와 입단계약을 맺었다. 2009년 싱글A 무대에서 9승1패의 호성적을 올리며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어깨가 아팠다. 결국 지난해 8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방출통보였다. 남윤희는 "구단에서 수술까지 시켜줘 솔직히 방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충격이 컸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구단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텍사스가 많이 기다려줬다. 텍사스 구단에 서운한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요미우리 입단을 위해 테스트를 봤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구속이 130km 중반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남윤희는 "수술한지 얼마 안돼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구속이 잘나와 놀랐다. 그만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구단들은 즉시 전력을 원하는 눈치였다"며 입단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게 돌고돌아 안착한 곳이 독립구단인 고양이었다. 지난 12일 팀에 합류한 남윤희는 "솔직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있고 김성근 감독님께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려 입단을 결정했다"며 "다른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나에겐 큰 꿈이 있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고양에서 차근차근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꿈은 바로 자신에게 실패의 쓴 맛을 줬던 메이저리그 무대에 당당히 서는 것이었다.
▶"국내 복귀? 할 수 만 있다면…."
남윤희는 5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돌이켰다. "마이너리그 생활이 매우 고되고 힘든 것으로 알려졌더라. 실제로 그랬다. 식사도 부실하고 이동거리도 길었다. 하지만 버틸만 했다. 그것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것은 야구선수로서 핑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힘든 부분은 따로 있었다. 누구와도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윤희는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선수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자주 어울렸다. 하지만 결국 껍데기 뿐이었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니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없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양이 손길을 내밀었을 때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남윤희는 "한국 동료들과 함께 운동하는 자체가 너무 좋다"며 밝게 웃었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남윤희는 "2년 제한 규정이 있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규약 105조 2항에는 '한국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아마추어에서 곧바로 해외로 진출했던 선수는 2년 동안 한국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그래서 당장 한국 프로팀과는 계약을 맺을 수 없다. 2년 후 드래프트를 거쳐 입단해야 한다. 아쉬움의 표현이었다. 남윤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불러만 주신다면 국내 무대에서도 꼭 뛰고 싶다"며 "프로야구 인기가 정말 좋더라. 신나게 야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말을 하며 그 모습을 상상했는지 매우 설레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남윤희는 "일단은 고양에 입단했으니 고양을 위해서 열심히 훈련하고 던질 것"이라며 "잘 준비한다면 분명 좋은 기회가 다시 한 번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