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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변신 리즈,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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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국 보스턴 지역언론에 등장했던 보도내용 가운데 워낙 인상적인 표현이 있어 그간 두세차례 인용했던 적이 있다.

'(Bull)Pen is mightier than~'이라는 표현이었다. 지난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좋은 성적을 낼 때 강인한 불펜진을 보유했는데, 보스턴 현지 언론에서 이처럼 헤드라인을 뽑았다. 문구에 비교 대상을 넣지 않았다. 한마디로 보스턴 불펜진이 자체로서 독보적인 위력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는 어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리즈, 마무리로 돌린 까닭은

LG 김기태 감독은 최근 전훈캠프를 마치고 귀국, 담당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올시즌 선발은 리즈가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다. 러다메스 리즈는 한국에서의 첫해인 지난 시즌에 30경기(선발 28경기)에 등판, 완투패 1번을 포함해 11승13패, 방어율 3.88을 기록했다. 한국프로야구 소속 투수 가운데 8번째로 많은 164⅔이닝을 먹어치웠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경기는 16차례로 전체 6위였다.

이처럼 선발로서 검증된 투수를 마무리로 돌리는 건 어찌보면 도박이다. 경기조작 파문으로 인해 선발 자원 2명이 퇴단조치를 당한 상황에서 리즈마저 불펜으로 돌린 건 결국 불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90년대에 한국프로야구의 불펜 나눠막기 개념을 실전에서 정립한 지도자는 김인식 전 감독이었다. 그후 2000년대 들어와선 중요성이 더 강조됐다. 20년 전의 프로야구는 선발투수부터 갖춘 뒤 불펜을 걱정했는데, 최근 들어선 처음부터 선발과 불펜의 최적 배분을 고려하고 있다. 오히려 불펜부터 설계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물론 강력한 마무리투수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LG는 수년간 허약한 불펜 때문에 고생했다. 지난해만 해도 LG 팀타율(0.266)은 4위였다. 공격력이 나쁘지 않았다. 7회까지 리드했던 경기에서 51승9패로 승률 8할5푼을 기록했는데, 이는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나쁜 승률이었다. 역시 불펜이 강력한 삼성이 7회까지 리드했던 경기에서 65승1무1패, 승률 9할8푼5리로 가장 탄탄했다. 이길 때는 왕창 이기고, 아슬아슬한 경기는 막판에 넘겨주는 경우가 많은 게 LG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선발투수의 마무리전환

LG의 마무리투수 역사는 잔혹사였다. 지난 2007년 우규민이 30세이브를 기록한 뒤 한시즌 개인 최다세이브는 2010년 오카모토의 16세이브였다. 2008년 이후 LG의 팀 전체 세이브는 111개로 전체 7위다. 이렇다보니 김기태 감독은 취임 초기부터 "집단 마무리체제는 없을 것이다. 누가 됐든 LG 마무리투수는 한명으로 정해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일단 리즈는 기본적으로 마무리투수의 '스펙'을 갖춘 투수임은 분명하다. 최고 시속 160㎞에 육박하는 공을 뿌릴 수 있다. 물론 제구력은 뛰어난 편이 못 된다. 선발로 뛸 때는 4회 정도가 지나면 구속이 확연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대신 마무리로 1이닝 안팎만 던진다면 빠른 구속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 마무리 바티스타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9회에 일단 150㎞ 넘는 공을 던지는 마무리투수가 나오면 타자가 공략하기 힘들다.

대신 선발투수의 마무리전환은 전제조건이 있다. 5일에 한번씩 편안하게 등판하는 선발투수와 달리, 마무리투수는 상시 대기해야 한다. 어깨가 빨리 풀려야한다. 게다가 볼넷을 남발하는 투수는 마무리투수로선 실격이다. 이 점에선 리즈가 불안한 구석이 있다. 리즈는 지난해 9이닝당 볼넷 4.59개로 넥센의 나이트(5.12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투수였다. 물론 본격적인 마무리로 뛰게 되면 볼넷 수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새가슴이냐 아니냐'의 여부다. 선발투수는 초반에 난타당하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스스로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 선발투수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3연속 안타만 맞지 않으면 웬만큼 관리가 된다. 하지만 마무리투수는 중장거리 한방이면 블론세이브 위기에 처할 때가 많다. 이때 강한 가슴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가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리즈는 지난해 전반기 막판에 잠시 임시로 불펜 전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일단 리즈 본인은 지난해 마무리투수로 등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의 기록상에는 빅리그 경력 19게임 가운데 18차례가 불펜 등판이었고, 2차례 세이브 기회에서 1차례 세이브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일단 선발투수가 마무리로 돌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 코칭스태프가 의도했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다. 리즈의 마무리 적응이 성공해야 시즌 초반 LG 벤치가 바빠지지 않을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