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경칩을 지나자 양지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제 파릇한 새싹이 돋고, 매화, 산수유, 진달래 등이 차례로 들녘을 수놓을 차례다. 이처럼 화사한 봄은 온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계절이다. 그중 미각을 통한 봄맞이처럼 생생한 것도 또 없다. 이즈음 봄 느낌 가득 담긴 먹을거리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야들야들한 도다리살과 향긋한 새쑥이 어우러진 거제의 '도다리 쑥국', 쫄깃쫄깃 오동통한 서천의 '주꾸미', 살이 꽉 찬 '영덕 대게', 새콤달콤 무쳐 먹는 '바지락회무침', 굴과 꼬막을 합쳐 놓은 듯 한 식감의 '섬진강 강굴'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절로 도는 별미들이다. 이들 봄철 미식거리는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돌려 주기에 충분하다. 글·사진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1. '도다리쑥국'(경남 거제)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봄철 대표 어족으로는 '도다리'를 꼽을 수 있다. 거제-통영-고성 등 경남 해안지방에서는 이른 봄 싱싱한 도다리쑥국을 최고의 별미로 꼽는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싱싱한 도다리와 갓 뜯은 쑥을 넣어 끓여낸 게 국물 맛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특히 봄철 새내기 식재료인 싱싱한 도다리와 봄 쑥의 어우러짐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야들야들한 도다리 살과 향긋한 쑥 내음이 폴폴 나는 시원한 국물은 겨우내 돌아섰을 법한 입맛을 단번에 되돌려 준다.
도다리 쑥국의 맛내는 비결은 비교적 단순하다. 그저 제철 자연산 식재료를 쓰고 있다는 점이 비법에 가깝다. 싱싱한 도다리에 노지 쑥, 집된장, 쌀뜨물, 마늘, 소금이 전부다. 특히 쑥향을 제대로 내기 위해 비닐하우스 쑥을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도다리쑥국을 맛보기가 만만치 않다. 봄도다리가 제철을 맞고도 어획량 부진으로 가격이 급등한데다 자연산 쑥값도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거제 토박이들은 도다리쑥국의 대표 맛집으로는 거제시 사등면 성포리 포구에 자리한 60여년 전통의 평화 횟집을 꼽는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며느리 김정숙씨가 잇고 있다. 도다리쑥국 1만2000원선.
한려수도가 시작 되는 경남 거제는 요즘 봄기운이 완연하다. 양지에 피어오른 화사한 동백의 자태에도 봄 냄새가 가득하다. 따라서 이즈음 거제를 찾으면 수려한 '해변 드라이브의 낭만'과 '봄철 별미'라는 멀티 여정을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마지막 IC(동통영 IC)~거제~사등면 성포리 포구
2. 대게(경북 영덕)
봄철 별미로는 대게를 빼놓을 수가 없다. 눈이 내리는 12월경부터 본격 대게 시즌이 시작되지만 특히 3~4월에 나는 대게가 속살이 꽉 차 맛이 좋다. 때문에 대게의 고장 경북 영덕과 울진에서는 이무렵 대게 축제도 벌인다. 대게는 대체로 동해안 일원에서 잡히지만 영덕이 집산지인 관계로 명성이 높다. 영덕 강구항 대게거리에는 영덕대게 전문집 100여 곳이 몰려 있다. 속살 꽉 찬 싱싱한 대게 찜과 전골 등 다양한 대게요리를 맛볼 수 있다. 대게를 구입할 때는 배 아랫부분을 눌러봐야 한다. 속이 덜 찬 물빵은 쉽게 꺼진다. 올해는 대게 값이 크게 올랐다. 요즘 강구어시장에서는 살이 덜 찬 일명 '치수게' 450~500g짜리 한 마리가 1만2000~1만5000원씩 거래된다.
별미를 맛본 후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즐기는 바닷가 드라이브도 괜찮은 여정이다. 강구항부터 축산항 까지는 동해안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이다. 영덕 앞바다의 전망대 구실을 하는 창포등대에 오르면 풍력발전단지와 청정 동해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나무 데크 산책로와 전망대, 쉼터와 갈대숲, 음악과 물고기 조각이 어우러진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등대 아래 야생화공원을 내려가면 바다를 배경 삼아 핀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해안을 끼고 자리한 창포리는 낮은 야산 지대와 바다와 접해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있는데 발전기 20여 개가 능선을 수놓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한편 울진 죽변-후포항을 찾아도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34번국도 안동 진보~황장재 고개~34번국도 따라 동해안으로 끝까지 가면 7번국도. 여기에서 남쪽으로 20분 정도 내려오면 강구항.
3. 주꾸미(충남 서천)
봄철 서해안을 대표하는 미식기행지로는 단연 충남 서천을 꼽을 수 있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즈음 서해안에서는 싱싱하고 구수한 봄맛 잔치가 시작된다. 졸깃졸깃 오동통한 주꾸미가 그 주인공이다.
주꾸미는 생김새가 낙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몸집이 더 작고 다리도 짧다. 전체 길이는 길어야 20㎝ 남짓이다. 문어과의 주꾸미는 지역에 따라 쭈껭이-쭈깨미-쭈꾸미 등으로 불리는데, 산란기를 앞둔 3~4월이 제철이고 맛도 좋다. 대도시에서는 주로 양념숯불구이로 내놓고, 산지 포구에선 전골과 샤브샤브, 회를 상에 올린다. 선도의 차이 때문이다. 주꾸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알. 미식가들은 주꾸미 알을 봄철 최고의 별미로 친다. 봄 주꾸미 머리(몸통)에 잘 익은 밥알과도 같은 알이 들어 있다. 때문에 바닷사람들은 이를 '주꾸미 쌀밥'이라고도 부른다. 몸통을 잘라 통째로 입에 넣어 씹으면 마치 찰진 쌀밥을 씹는 느낌이다. 또 하나의 미식 포인트는 먹물. 방어 수단인 먹물이 숙취 해소에는 그만이다.
주꾸미는 서면 마량항-홍원항에 가면 맛볼 수 있으며, 가격은 소출에 따라 일정치 않다. 3~4만원이면 서너 명이 맛을 볼 수 있다. 때를 맞춰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원에서는 '서천 동백꽃 주꾸미 축제(3월24일∼4월6일)도 벌인다.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춘장대IC~서면~마량포구~동백정~홍원항
4.바지락회무침(전남 목포)
봄철 목포의 별미거리로는 바지락을 빼놓을 수 없다. 갓 캐낸 싱싱한 바지락을 새콤달콤 무쳐 먹는 맛이 별미다. 목포에서 맛보는 바지락회무침에는 신선한 갯내음이 가득하다. 특히 바지락회무침은 갓 캔 싱싱한 것을 써야 하는 관계로 바지락 산지가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굴이야 채취 후 하루 이틀을 나둬도 선도가 유지되지만 바지락회는 당일 생물이 아니면 제 맛을 낼 수 없다는 게 미식가들의 주장이다. 특히 냉동바지락은 국거리는 될 수 있어도 횟감은 안 된다. 탱탱한 탄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바지락회무침이야말로 수입 산이 아닌 신토불이 식재료로만 만들 수가 있다.
목포에서 바지락회를 제대로 무쳐 내는 집으로는 하당 신도시에 자리한 '해촌'이 꼽힌다. 신안 압해도 출신 여주인의 손맛이 일품이다. 이 집 바지락회는 완도, 해남산 바지락을 가져다 쓴다. 바지락은 양식이 되지 않아 모두 자연산임은 물론이다. 깐 바지락에 돌미나리, 배, 오이, 양파, 참나물 등의 야채와 양념장을 넣고 무쳐낸다. 특히 새콤 쫄깃한 바지락무침의 맛을 내는데에는 막걸리식초가 주효하다. 6개월 숙성시킨 막걸리식초는 무침에 깊은 맛과 청량감을 더해준다. 또 매실 엑기스를 첨가해 맛은 물론 배탈도 방지한다.
바지락회무침은 그냥 술안주로도 훌륭하지만 따뜻한 밥에 바지락 회무침을 듬뿍 얹어 참기름에 비벼 먹는 것도 일미이다. 바지락 국물은 뽀얀 국물이 시원한 맛을 낸다, 바지락죽 7000원, 바지락회무침 2만, 3만, 4만원.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목포 IC~목포시내(하당).
5. 섬진강 강굴(벚굴)
이른 봄 섬진강 하구를 찾으면 귀한 별미거리를 만날 수 있다. '강굴(벚굴)'이 그것이다. 강굴은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라는 초대형 굴로, 크기가 20~30cm, 알맹이도 거진 어른 손바닥만하다. '키가 크면 심심하다'는 속설과는 딴판. 짭조름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게 일품이다. 바다와 강물이 섞여 적당히 간이 밴 것이 보통 바닷굴에 꼬막을 합쳐 놓은 듯한 맛과 식감을 지녔다.
강굴은 수질이 깨끗한 곳에서 서식하는데, 입춘부터 벚꽃이 만개할 즈음까지가 그 맛이 최고라 해서 '벗굴' 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섬진강 하구에서도 강굴 나는 곳은 한정돼 있다. 전남 광양시 망덕포구 일원이 집산지로 인근 돈탁마을 등에서 잠수부가 강굴을 채취한다. 어부들은 강굴을 최고의 강장제라고 자랑이다. 일반 굴보다 영양가가 높고 피부미용에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망덕포구의 횟집에서는 요즘 강굴 맛을 볼 수 있다. 구이나 죽, 튀김, 전, 찜 등 요리법도 다양하다. 제 맛을 즐기려거든 양념 없이 생굴을 맛보는 것도 좋다. 입 안 가득도는 강굴 특유의 향이 마치 섬진강의 봄을 통째로 맛본 듯 하다. 인근 하동 신방마을 등에서도 강굴을 맛볼 수 있다. 10㎏ 기준 3만∼5만 원선.
섬진강유역은 최근 꽃망울을 활짝 터트린 매화에 이어 조만간 10리 벚꽃 길까지 즐길 수 있어 식도락을 곁들인 봄여행지로 제격이다.
▶가는 길=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완주 순천고속도로(전주-광양간 고속도로)~동순천 IC~광양시~망덕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