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들어 졌다." (파첸코 베이징 궈안 감독)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장수 광저우 헝다 감독)
하루만에 180도 다른 스토리였다. 베이징 궈안은 6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울산에 1대2로 졌다. 포르투갈 출신의 파첸코 베이징 감독은 전술과 기술보다는 자신감에서 패인을 찾았다. 한국팀과의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이 움츠러든다는 얘기. 지난 7일 광저우는 K-리그 챔피언 전북을 상대로 5대1로 이겼다. 한-중 챔피언 대결에서 이긴 이장수 광저우 감독은 의기양양했다.
과연 중국 축구는 한국 축구를 따라 잡았는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한국이 30위(아시아 2위), 중국이 68위(아시아 6위)다. FIFA랭킹은 유의미한 수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사실 전북-광저우 한 경기를 놓고 한국 축구와 중국 축구의 수준을 직접 논하는 것은 무리다.
한 나라의 축구 수준은 각급 대표팀, 리그, 리그 대항전, 축구 저변, 발전 가능성, 해외파 수준, 지도자 양성 등 손으로 꼽기 힘든 다양한 요소의 복합체다.
이번에 전북이 충격 패배를 당했지만 어지럼증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2월 10일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A대표팀은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에 0대3으로 대패했다. 무려 32년간 이어져온 A매치 중국전 무패행진(16승11무)이 깨진 순간이다. '공한증(중국 축구의 한국 축구 두려움증)' 종식은 한국 축구의 위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후 바뀐 것은? 딱히 없다. 한국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을 했고, 당시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했던 중국은 2년 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중국 축구가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한국 축구만 못하다. 적어도 한 수는 차이가 난다.
가능성은 열어둬야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하루 아침에 주도권이 바뀔 것 같진 않다. 중국 축구는 여전히 세계 무대에서 부진을 거듭한다. A대표팀의 미미한 활약은 꿈틀대는 자국리그 붐 조성에 매번 찬물을 끼얹고 있다.
다만 경제 활성화에 힘입어 쏟아붓는 엄청난 투자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 리그는 세계적인 스타들을 사 모으고 있다. 광저우 역시 전북전에서 브라질 용병은 클레오가 2골, 무리키가 1골, 아르헨티나 용병 다리오 콘카가 2골을 넣었다. 콘카는 몸값이 이적료와 연봉을 합쳐 300억원에 육박하는 거물이다. 광저우는 이날 특급 용병 3명과 중앙 미드필더 조원희가 경기를 주도했다.
투자는 발전을 낳는다. 용병 수준 향상은 중국 토종 선수들의 경기력 상승에 점진적인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용병이 리그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지라도 말이다.
중국 축구가 무서워질 것이라는 얘기는 10년도 더 됐다. 해가 갈수록 중국 축구의 더딘 성장은 미스터리 취급을 받는다. 13억5000만명의 거대 인구인 중국은 이미 올림픽에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포츠 공룡'이 됐다. 축구는 예외다. 정부까지 나서 각종 지원책을 내놓지만 별효과가 없다.
사회적인 구조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산아제한 정책으로 외아들로 커온 중국 선수들과 단체경기인 축구의 궁합은 맞지 않는다는 것.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지성(맨유)도 외아들이다.
체력과 체격, 개인기는 큰 문제가 없지만 막상 경기력에선 아쉬움을 남기는 중국 축구.
빨라진 세상은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을 만들어 낸다. 중국 축구라고 불가능할 리는 없지만 뼈아픈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음은 몇 년전 중국 언론인이 자국 축구를 한탄하며 한 얘기다.
한국 축구팬이 부처님에게 '한국이 언제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30년 후'라고 답한다. 한국팬은 아쉬워 울었다. 일본 축구팬이 와서 부처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40년 후'라는 대답을 들었다. 일본 축구팬도 울었다. 이번에는 중국 축구팬이 같은 질문을 물었다. 이를 들은 부처님이 돌아앉아 울었다. 그때가 언제올 지 몰라 측은한 마음에.
중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으로 자동출전했을 때를 빼고 월드컵 본선을 밟은 적이 없다. 진정한 월드컵 본선 진출, 월드컵 첫 승점(무승부), 월드컵 첫 승, 월드컵 16강, 월드컵 4강.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따라 잡으려면 넘어야 할 관문들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