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대전 시티즌 공식 홈페이지에 '최은성'이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연봉 협상에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름을 지우는데는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팬들의 불만에도 대전 구단의 자세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고 있다.
'레전드' 최은성(41)의 부당한 은퇴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최은성이 서포터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팬들의 불만은 구단 수뇌부를 향하고 있다. 최은성은 프로축구연맹이 지정한 최종 선수등록일이었던 2월 29일까지 대전과 협상을 완료하지 못했다. 선수등록에 실패한 최은성은 은퇴의 길에 들어섰다. 말이 협상 결렬이지 사실상 '등 떠밀린' 은퇴였다. 대전서포터 '퍼플크루'와 '지지자연대'는 항의의 뜻으로 4일 경남과의 원정경기에서 응원 걸개를 거꾸로 걸었다. '최은성이 대전이고, 대전이 최은성이다'는 걸개만이 제 모습을 보였다. 대전서포터는 11일 전북과의 홈개막전을 벼르고 있다. 대대적인 항의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사태의 키를 쥐고 있는 대전 구단은 잠잠하다. 오히려 최은성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며 변명에 급급한 모습이다. 구단이 잠잠하자 시가 나섰다. 염홍철 구단주는 구단 홈페이지에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실제로 최은성과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전은 막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서포터들이 홈개막전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 할 뿐, 코칭스태프 합류 제안 혹은 은퇴식 등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제시에는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대전의 변명과 달리 최은성 방출을 위한 징후는 여기저기서 나왔다. 김광희 사장은 지난시즌 최은성의 출전경기수 걸개를 치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 최은성 관련 동영상을 틀지 말고, 최은성 관련 보도자료 역시 내지 말라고 했다. 해마다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아도 '당연히 재계약 할 것'이라는 신뢰속에 나왔던 12, 1월 월급이 이번에는 나오지도 않았단다. 대전에 온지 1년도 안된 사장이 14년 동안 헌신한 레전드를 내쫓은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에도 최은성은 레전드 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나때문에 선수단 분위기가 흔들릴까봐 걱정이다. 겨우내 함께 흘린 땀방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포터에게도 내 문제는 별개로 선수단을 응원해 달라고 했다. 나는 팬들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이어 "당장 구단이 어떤 제의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며 구단에 대한 섭섭함은 감추지 않았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최은성의 흔적은 그의 출전경기수를 보여주던 걸개다. 이 숫자는 464에서 멈췄다. 아쉬운 것은 이 숫자가 멈췄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로답지 못한 구단이 레전드를 떠나 보낸 방식 때문이다. 29일 그라운드에서 팬들의 환대 속에 떠나야 하는 레전드는 작은 술집에서 서포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들만의 작별식을 치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