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 꼬리표를 뗀 최용수 FC서울 감독(41)이 폭발했다.
꺼내든 칼은 간판 스트라이커 데얀(31)을 정조준했다. 거침이 없었다. 서울은 4일 대구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대구와의 2012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개막전에서 1대1로 비겼다. 최 감독은 0-1로 뒤진 전반 22분 두 눈을 의심케하는 교체카드를 꺼냈다. 데얀을 빼고 김현성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던졌다.
데얀의 태업에 분노했다. 최 감독은 경기 후 "본인과 구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긴 하지만, 대화하면서 서로 약속을 했다. 팀 동료들이 보여준 신뢰를 망각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교체는 내 절대적인 권한"이라고 못박은 후 "내가 아는 데얀은 공을 만지고 싶어하고,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선수다. K-리그에서 최고다. 그런데 모든 부분에서 단 1%도 해당 사항이 없었다. 본인은 팀과의 약속을 어겼다"고 강조했다.
▶데얀과 서울, 어떤 일이 있었나
데얀은 K-리그 간판 스트라이커다. 2010년 서울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그는 지난해 득점왕(24골)을 차지하며 지존으로 우뚝 섰다. 꽃향기가 진하면 벌이 모인다. 자연스럽게 주가가 치솟았다. 중국 광저우 부리가 올초 서울에 공식적으로 영입 제안을 했다. 이적료 430만달러(약 48억원)를 제시했다. 서울은 불가 방침을 세웠다. 우승 탈환을 위해서 데얀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광저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절당하자 이적료를 500만달러(약 56억원)로 올렸고, 데얀에게는 서울에서 받은 연봉의 두 배가 넘는 180만달러(약 20억원)를 제시했다.
데얀은 흔들렸다. 지난달 초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이틀이나 훈련에 불참하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서울은 데얀과의 계약기간이 내년 말까지다. 칼자루를 쥔 서울은 광저우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앙금은 여전히 남았다.
▶데얀은 정말 태업했나.
데얀은 이날 원톱으로 출격했다. 최 감독은 시즌 첫 전술로 변형 4-2-3-1 시스템을 꺼내들었다. 원톱은 불변이었다. 데얀이었다. 그 바로 밑에서 몰리나, 고명진 등이 포지션을 바꿔가며 변화를 줬다. 하지만 데얀이 흐름에 찬물을 끼얹으며 전술은 엇박자를 냈다.
A매치 데이를 맞아 몬테네그로대표팀에 차출됐던 데얀은 지난 2일 귀국했다. 시차 적응과 체력 부담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2007년 K-리그에 발을 들인 그는 워낙 밝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파이팅이 넘친다. 더욱이 무대는 개막전이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태업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무기력했다. 몸이 무거웠다. 평소 수비 가담도 뛰어나지만 이날은 활동폭이 적었다. 수비수와 부딪히기만하면 넘어졌다. 슈팅 1개도 날리지 못했다. 그의 공식 출전 기록은 한 차례 파울을 유도한 것 뿐이다.
그 사이 서울은 전반 13분 대구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데얀의 덫에 걸리자 최 감독은 탈출구가 없었다. 곧바로 김현성에게 몸을 풀도록 지시했다. 전반 22분 데얀은 아웃됐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나
그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을까. 아니다. 일단 격한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시즌은 시작됐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다. 대화로 분위기 반전을 모색한다는 것이 서울의 입장이다. 데얀도 서울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그는 입버릇처럼 서울을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그라운드에서는 본분을 지켜야 한다.
최 감독은 격분했지만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 경기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본인이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면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지금 마음가짐으로는 안 된다. 다음 경기에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대구=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