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멘탈(Mental, 정신적인) 게임이다. 이렇게 말하면 축구는? 야구는? 테니스는? 당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 선수들이 발끈할 듯 하다. 그렇다. 모든 스포츠의 근간은 정신력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정도는 골프가 제일 심하다. 민감한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12일 호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인 호주여자오픈에서 서희경(26·하이트)과 유소연(22·한화)은 나란히 1.2m 파퍼트를 놓쳐 우승을 허공에 날렸다. 이미 상한 기분으로 들어간 연장에선 기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
짧은 퍼트의 성패는 실력보다는 강한 정신력이 우선이다. 자신을 믿고 과감해야만 안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부담감은 근육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킨다. 극도의 긴장으로 퍼트 실수를 유발하는 이른바 '입스(yips)'다.
하루만에 이번에는 위창수(40·테일러메이드)가 우승을 날렸다. PGA 투어 8년차에 4번의 준우승. 5번째 도전은 3타 차 리드로 꽤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필 미켈슨(42·미국)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했다. 미켈슨은 13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골프장(파72)에서 끝난 PGA 투어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마지막 4라운드에서 무려 8타를 줄였다. 합계 17언더파로 위창수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역전우승을 했다. 위창수의 생애 5번째 준우승.
미국 언론은 4라운드 시작부터 선두인 위창수보다는 추격자인 타이거 우즈(37·미국), 미켈슨에 더 주목했다. 162차례 대회 도전에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위창수의 '무경험'을 흠으로 봤다. 결국 위창수는 마지막날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1,2,3라운드 사흘 내내 선두를 달렸지만 마지막날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이날 미켈슨은 정신력으로 우승을 따냈다. 4라운드 동반자는 타이거 우즈였다. 미켈슨은 우즈가 세상에서 제일 미울법하다. 우즈 때문에 세계랭킹 1위를 한번도 못했고, 2004년 마스터스 우승 이전까지는 메이저 우승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었다. 10년 넘게 우즈만 만나면 움츠러들었다. 미켈슨의 '타이거 포비아(호랑이 공포증)'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이날 미켈슨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우즈를 오히려 압도했다.
의미있는 데이터도 있다. 2007년 이후 미켈슨은 우즈와의 11차례 맞대결에서 7승1무3패로 비교 우위다. 라이벌 미켈슨과의 대결에서 오히려 스트레스 받은 쪽은 우즈였다. 우즈는 3라운드 3위에서 공동 15위까지 미끄럼을 탔다. PGA 투어 40승인 미켈슨, PGA 71승인 우즈. 이들에게도 골프는 여전히 멘탈 게임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