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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정확+파워' 프리킥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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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이 빠르다. 날카롭게 휜다. 공격수들의 머리와 발끝으로 연결되는 정확한 프리킥과 롱패스에 상대팀 수비들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A대표팀과 셀틱의 '전담 키커' 기성용(23·셀틱)의 얘기다. 다른 어떤 수식어보다 기성용을 잘 설명하는 단어는 바로 '전담 키커.' 셀틱에서 모든 프리킥 코너킥을 그가 담당한다. 2011~2012시즌에는 페널티킥 전담 키커의 임무까지 그에게 주어졌다. 킥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라는게 축구계의 평가다. 그런데 기성용은 언제부터 프리킥을 잘 찼을까. 또 그가 프리킥을 잘 차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전남 광양에서 만난 기성용의 부친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이 프리킥에 관한 일화를 털어놨다.

▶프리킥으로 시작된 축구 인생…아파트 벽에서 골대를 보다

꼬마 기성용은 금호고와 광양제철고등학교에서 축구 감독으로 재직한 아버지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볼과 함께 살았다. 하루종일 볼을 차 옷에 먼지가 가득한 채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동네에서 공 좀 차는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축구는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1998년 광양제철초교 3학년에 재학할 당시 아버지를 따라 간 한 축구장, 중학교 1학년 신입생들간 연습경기였다. 기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당시 친한 중학교 감독에게 부탁해 아들을 경기에 뛰게 했다. 동네축구 밖에 모르던 아들은 얼떨결에 경기에 나갔고, 프리킥 찬스를 잡았다. 기 회장은 감독을 한번 더 부탁해 아들에게 프리킥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큰 곡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던 공이 그대로 골대 구석에 꽂힐 줄이야.

기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초등학생 3학년인 성용이가 프리킥 골을 넣자 중학생 형들도 깜짝 놀라더라. 그때 프리킥 차는 걸 보고 축구시키자고 생각했다." 축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 프리킥이 연습경기에서 발휘된 순간 기 회장은 기성용을 순천 중앙초교로 전학시켰다. 기성용이 두각을 드러내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0년 초등학교 5학년때 전국소년체전에서 우승하며 최우수선수상을 거머 쥐었고 2001년에는 차범근 축구대상까지 받았다.

기 회장에게 직접 물었다. '3학년생이 어떻게 프리킥을 잘찼을까요.' 돌아온 답 속에 비결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킥 감각이 좋았다. 그 뒤에 숨겨진 노력도 많았다. 성용이는 항상 나이가 많은 형들하고 공을 찼다. 아마 형들보다 더 잘 차고 싶은 생각에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동네에서 공 차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살던 아파트 벽에 동그란 원을 몇 개 그려놓고 프리킥 연습을 하더라. 다른 동네 형들은 공 주고 받고 연습을 하는데 성용이는 그 원을 맞추기 위해서 수십번 공을 찼다. 아마도 그때 공의 궤적이나 타깃을 맞추는 정확도를 키웠던 것 같다."

▶호주 스테이크 먹고 자란 파워, 그리고 1m90

기 회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기성용을 호주 존 폴 칼리지로 축구유학을 보냈다. 축구는 못해도 좋으니 영어만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보낸 유학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뒀다. 호주에서 매일 고기(스테이크)를 먹더니 키가 불쑥 자랐다는 것. 한국에 있을때만 해도 또래와 비슷한 수준의 키였는데 호주에서 남들보다 머리 하나 높이만큼 더 커서 돌아왔다. 몸에 힘까지 붙었다. 그 힘은 킥 임팩트 순간 고스란히 공에 전달됐고 정교함에 파워까지 더해진 프리킥이 완성됐다. 셀틱에 진출한 이후 기성용의 프리킥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등산으로 꾸준히 허벅지 근력을 키운 결과다. 기 회장은 셀틱에 진출한 이후 키가 더 커진 것도 크게 한 몫했다고 분석했다.

"FC서울을 떠날때 프로필에 신장이 1m86었다. 그런데 셀틱 진출한 이후 더 컸다. 최근에는 1m90을 조금 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몸이 더 커지고 등산으로 허벅지랑 종아리가 더 굵어지니 요즘 파워가 더 붙은게 아닌가 싶다."

광양=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