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끝난 뒤 동부 강동희 감독은 "허허허"라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실에 들어온 김주성은 '오늘은 강력한 주제가 있다'는 취재진의 농담에 "최소득점이죠"라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11일 원주 동부-KGC전. 유쾌하지 않은 진기한 기록들이 쏟아졌다. 한 경기 최소득점. 두 팀의 스코어는 52대41, 동부의 승리. 두 팀 합쳐서 93점이었다. 종전 한경기 최소득점은 2011년 2월11일 동부와 전자랜드전에서 나온 101점이었다. 당시 52대49로 동부가 이겼다. KGC는 역대 한 경기 한 팀 최저득점도 기록했다. 41점. 종전에는 2010년 1월7일 오리온스가 기록한 47점이었다.
극심했던 저득점에 영향을 미친 보이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최후저항이 독이 됐다.
물론 양 팀의 최소득점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국내 최고수준의 경기력을 자랑하는 두 프로팀. 하지만 선수들의 공격 테크닉은 많이 부족했다. 개인능력을 키워야 할 아마추어 시절부터 패턴훈련에 매진하는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들.
하지만 이날 경기만 놓고 본다면 저득점이 나올 강력한 요인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은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가비지 타임은 이미 승세가 기운 경기에서 후보에 가까운 멤버로 경기를 운영하는 경기 막판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KBL에서는 불문율이 있다. 점수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사실상 승패가 결정됐을 경우, 승세를 굳힌 팀에서 후보들을 기용해 스코어 조절을 해 주는 것이다.
3쿼터까지 45-28, 동부의 17점 리드. 경기흐름을 봤을 때 사실상 뒤집기는 어려운 경기. 그러나 4쿼터 8분을 남기고 작전타임 후 나온 KGC 김태술과 박찬희는 박수를 치며 수비에 집중하려 했다.
여전히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 경기 종료 4분30초를 남기고 50-30, 20점차. 그러나 KGC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부 강동희 감독 역시 경계를 풀 수 없었다. KGC의 폭발적인 득점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윤호영을 석명준으로 교체하며 벤치에 앉혔고, 3분47초를 남기고 김주성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KGC는 여전히 주전들을 풀가동하고 있었다.
동부는 승부가 완벽히 결정된 1분35초를 남기고 용병 벤슨마저 불러들였다. 김주성이 벤치로 들어간 경기종료 3분47초를 남긴 상황에서 KGC가 뽑은 득점이 11점. 동부는 겨우 2득점에 그쳤다. KGC가 최소득점을 넘어서기는 가비지 타임이 너무 짧았고, 동부마저 가비지 타임에 2득점밖에 하지 못했다. 결국 한경기 최소, 한경기 한팀 최소득점이 세워진 가장 큰 원인이 됐다.
▶KGC는 너무 정직했다.
사실 54경기로 구성된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최악의 경기가 1~2게임씩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프로의 한 감독은 "시즌 동안 꼭 1~2차례는 선수들의 컨디션 저하와 체력부담, 그리고 정신적인 해이함이 겹쳐지는 경기들이 나온다"고 했다. 사실 KGC가 그런 날이었다. 또 하필 상대는 강력한 수비를 자랑하는 동부였다.
이런 외부변수에 두 팀의 전술까지 겹쳐졌다. 동부는 영리했다. 강 감독은 "골밑은 우리가 강하다. 때문에 상대의 골밑 1대1 공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 속공이었다. 이것을 막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지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이런 동부의 전술이 완벽히 먹혀들었다. 공격횟수가 많지 않았고, 결국 극심한 저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영리한 동부에 비해 KGC는 너무 정직했다. KGC가 동부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부분은 두터운 선수층에 의한 체력과 가드진이다. 반면 골밑은 떨어진다. 용병 로드 벤슨(동부)이 로드니 화이트(KGC)에 비해 높이와 스피드에서 모두 낫기 때문이다. 이날 벤슨은 22득점, 23리바운드, 화이트는 17득점, 5리바운드에 그쳤다. 둘의 맞대결에서 벤슨이 압도했다는 의미다.
반면 외곽의 공수능력은 KGC가 훨씬 낫다. 그럴 수밖에 없다.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등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부와 비슷한 패턴의 공격을 시도했다. 가드진을 이용한 1대1 공격은 없었다. 공격의 템포도 문제였다. 동부가 지공을 했다면, KGC는 빠른 템포의 농구를 가져갔어야 했다. 주전 모두 개인능력이 있는데다, 체력적인 문제점이 있는 동부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KGC는 너무 정직했고, 너무 어정쩡했다. 결국 KGC의 정직한 전술과 한 시즌 1~2게임이 나오는 최악의 변수(컨디션, 체력, 정신적 해이함)이 겹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원주=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