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이를 믿는다. 내가 총대를 매겠다."
유남규 남자탁구 대표팀 전임감독(44)은 비장했다. 탁구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에서 '애제자' 김민석(20·KGC인삼공사)이 18명 중 9위(10승8패)로 추락했다. 실업 랭킹 1위의 에이스가 대표팀 선발조건인 8위 밖으로 나가떨어지며 고개를 떨궜다. 이변이었다.
유 감독이 "만리장성을 넘을 수 있는 차세대 병기"라며 신뢰를 표해온 천재형 선수다. 탁구인들도 한목소리로 '한국 탁구의 미래'라고 믿어온 선수다. 김민석은 차원이 다른 서브와 드라이브, 코스를 읽는 예리한 눈썰미, 예민한 감각을 타고났다. 지난해 5월 로테르담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정영식(20·대우증권)과 함께 남자복식 3위에 오르며 세계무대에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5월 KRA컵 SBS최강전, 6월 전국남녀종별선수권, 8월 대통령기 남자단식을 잇달아 휩쓴 명실상부 실업 랭킹 1위, 차세대 최고 에이스다. 지난해말 전국남녀종합선수권에서도 선배 오상은과 단식 우승을 다퉜고, 남자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서 KGC인삼공사가 4관왕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2월 말 갑작스런 오상은 해고 사태 이후 충격에 휩싸인 KGC인삼공사 선수단은 훈련도 하지 못한 채 선발전에 나섰다. 하루아침에 감독과 코치를 잃은 '막내' 김민석은 흔들렸다. 형처럼 따랐던 이상준 코치 해고에 대한 충격과 상처가 컸다. 선발전 벤치에 고참 선수들이 앉아 말없이 물만 건넸다. 변변한 작전 지시도 없었다. 5일간 계속된 대표 선발 리그전에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민석은 선발전 넷째날인 7일 4경기에서 4전패했고, 8일 마지막날 왼손 에이스 서정화에게 1대3으로 패하며 9위를 확정했다.
선발전 기간 내내 '대표팀 사령탑' 유 감독은 김민석 때문에 잠을 설쳤다. "민석이가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마음이 여리다"고 했다. "이 정도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중국을 넘어서냐"며 때때로 혼자 분통도 터뜨렸다. 중립을 지켜야 할 전임감독이지만 재능 있는 제자의 추락을 그저 '강건너 불구경' 할 순 없었다. 남몰래 김민석을 불러세워 "대표팀에서 너의 감독이 될 사람은 나다. 태극마크만 생각해라. 흔들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9일 대한탁구협회는 국가대표 상비군 최종명단을 발표했다. 런던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톱 랭커 주세혁(32·삼성생명) 오상은(35)에 정영식(20·대우증권) 이정우(28·국군체육부대) 이상수(22·삼성생명) 서현덕(21·삼성생명) 유승민(30·삼성생명) 등 선발전 랭킹 8위까지 선수가 자력으로 선발됐다. 그리고 유 감독은 전임감독 추천전형으로 고교생 기대주 김동현(두호고·15위)과 함께 김민석을 뽑아올렸다.
한국 최고의 탁구스타 출신인 유 감독은 김민석의 보석같은 재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 돌려보내기에는 재능이 아깝다. 내가 총대를 매겠다"는 직설화법으로 김민석을 다시 품었다. "나는 민석이를 끝까지 믿는다"고 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탁구천재'의 탈락 이후를 염려했다. 런던올림픽의 해, 대표팀 탈락은 선수로서 꿈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유 감독은 소속팀의 내홍 속에 마음을 잡지 못하는 김민석의 '보호자'를 자청했다. 당장 15일부터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유 감독이 '에이스' 김민석을 다시 꿈꾸게 했다. 김민석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 감독을 다시 꿈꾸게 할 차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