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전도사'란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남자. 배우 이병준이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는 살짝 어설픈 악역 박봉호로, KBS2 '드림하이'에서는 교장 시범수로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가 뮤지컬로 돌아왔다. "뮤지컬은 내 고향"이라며 웃는 이병준, 그가 '미녀는 괴로워'를 선택했던 이유는 뭘까?
▶ 코믹 이미지? 부담 NO!
이병준은 '코믹연기의 달인'으로 평가된다. 중후한 목소리나 깔끔한 외모와는 달리 악역조차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코믹하고 맛깔나게 소화해 내는 인물다. 이번에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서 맡은 역할 역시 2% 부족한 성형외과 의사 캐릭터다. 엘리트로 인정받는 성형외과 의사이지만,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폰팅'으로 달래는 이중적인 인물 이공학으로 변신한 것.
이밖에 여주인공 강한별에게 묘한 점을 봐주는 거북이 도사 역할까지 1인 2역을 완벽 소화하고 있다. 이는 대학 강단에 서는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역할이다. 그런데도 '코믹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코믹한 모습을 기대하고 이병준을 부른다"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땐 얼마나 나를 필요로 하는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본다. 코믹한 이미지를 필요로 해서 나를 부른다고 생각한다.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요구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외를 두는 분야는 있다. 바로 '마담' 역할이다.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서 트렌스젠더 역할을 맡았던 적 있는데, 이후로 "실제 취향이 아니느냐"는 오해를 많이 받아 비슷한 캐릭터는 지양한다고. 무엇보다 "아내가 싫어해서 사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카라 박규리-바다, 배울 점 많은 친구들
이병준이 있는 촬영장은 항상 웃음이 가득하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배일수록 분위기를 풀어줘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배 앞에선 후배들이 긴장할 수 밖에 없는데 작은 일에도 호통을 치기 시작하면 호흡이 깨진다는 것. 그래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항상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다. 또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후배들과 격식없이 지내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이병준은 이번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카라 박규리나 바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규리는 카라 멤버 중에서도 뛰어난 가창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소탈하고 예의도 바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교만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또 바다의 열정을 보면서 열정을 아꼈던 내 모습은 잘못했다는 것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각자의 장점을 보고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이 이병준의 신조다.
▶ 연기 인생 25년, 정체는 없다
1987년 뮤지컬 '판타스틱스'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25년차 베테랑 연기자가 됐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구타유발자', 발을 찢고 춤을 추는 등 애드리브로 작품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복면달호', 실제로 트렌스젠더 바까지 출입하며 연기투혼을 불살랐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5년 동안 오베른이란 한 인물만을 연기했던 뮤지컬 '한 여름밤의 꿈' 등 베스트로 꼽는 작품도 있지만,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미 상반기에 예정된 촬영 스케줄만 시트콤 1편, 영화 1편, 미니 시리즈 1편이다. 쉴 틈 없이 달리겠다는 것. 이병준은 "힘들어도 행복하다. 일을 하는 사람은 노화 속도도 늦을 뿐 아니라 더 젊어진다. 일하면서 젊어지고 건강해지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라고 말했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바로 논문에 대한 미련이다. 일을 많이 하다보니 계속 논문 발표를 미루게 된 것이 아쉽다고. 그는 "가능하면 올해에는 논문을 발표하고 싶다"며 웃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