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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이천수 용서했지만 모든 결정은 전남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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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제자를 용서했다. 앙금은 없었다. 하지만 사건과 거리를 뒀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박항서 상주 감독은 지난 6일 이천수(32)가 전남 드래곤즈 구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고 했다. 2009년 6월 코칭스태프에게 항명하고 팀을 무단이탈해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로 이적한 이천수가 전남 구단과 팬들에게 처음 사과의 뜻을 밝힌 글을 말이다. 이후 상황도 언론을 통해 지켜봤다. 전남은 즉시 '임의탈퇴 선수 공시를 철회할 의사가 없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이천수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었다.

사건 당시 전남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박 감독이기에 관심을 접으려 해도 귀는 계속 열려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이번 사건을 '개인적인 일'과 '공적인 일'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일은 자신은 물론 당시 전남 코칭스태프와 이천수의 관계였다. 박 감독은 지난달 이천수와 전화통화에서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사건 이후 한 번도 통화하지 못하다가 지난달에 이천수가 전남 구단을 방문한 뒤 전화를 했다. '죄송하다'고 얘기해서 '나한테 죄송할 것 없다. 개인적으로는 용서한지 오래 됐다. 나보다 전남 팬과 K-리그 팬들, 전남 구단에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고 했다."

박 감독은 2009년 여론이 좋지 않던 이천수를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영입했다. 공을 많이 들인만큼 이천수의 배신에 마음의 상처는 컸다. 처음에는 원망도 했다. 자신의 선택을 몇 번 되물으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한 참 흐른 뒤 이천수의 행동을 모두 용서하기로 했단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며 천수는 축구계 후배이기도 하다. 마음은 아팠지만 개인적인 마음의 앙금은 모두 지웠다."

다음은 공적인 일에 대한 얘기가 이어졌다. 선을 그었다. 최대한 말을 아꼈다. 자신이 관계된 사건이지만 현재 전남에 몸담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왈가왈부하는게 맞지 않다고 판단했단다. "나는 지금 전남에 없다. 코치들도 대부분 떠났다. 공적인 부분에서 '나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는게 책임을 회피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전남 구단이 선택해야 할 문제다."

박 감독은 이천수가 한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진정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판단할 부분이 아니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것은 각자가 판단해야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천수가 팬이나 구단에게 계속 진실된 사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며 "슬기롭고 지혜롭게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각자의 몫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