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騎虎之勢)의 자세로 해보려구요."
허정무 인천 감독의 신년출사표다. 허정무 인천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의중을 사자성어로 나타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행을 결정짓는 운명의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도 가라앉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의미)'로 출사표를 던졌으며, 지난해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함)'의 해라고 했다. 올해는 '기호지세'를 꺼냈다.
'기호지세'란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형세라는 뜻으로, 이미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012년부터 도입되는 '스플릿시스템(Split System)'에 의한 강등제, 숭의구장 개장 등 산재해있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뚝심있게 그리던 그림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지난해 허 감독에게는 환희보다 좌절이 더 많았다. 2010년 9월 지휘봉을 잡은 뒤 인천에서 보내는 실질적인 첫 시즌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뜻처럼 쉽지 않았다. 열악한 여건과 재정에 하루가 멀다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골키퍼 윤기원의 자살과 승부조작 사건, 유병수의 중동 이적 등이 겹치면서 한시즌 내내 출렁였다. 대화를 위해 서포터스를 찾았다가 면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겪었다. 결국 인천은 중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6승14무10패(승점 32)로 13위에 그쳤다.
그러나 허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임진년 새로운 희망을 노래했다. 허 감독은 "시민구단에 있으면서 많은 벽을 만났다. 솔직히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에게도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보다 무언가를 이루는게 더 중요하다. 올시즌에 강등이라는 변화가 있는만큼 선수들도 더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인천은 유일한 창단멤버였던 전재호를 부산으로 보내며 기존의 색깔을 완전히 지웠다. 대대적인 선수 보강을 통해 전력 향상을 꾀하고 있다. 특정 포지션보다는 전 포지션에 걸친 고른 보강이 될 것이라고 귀뜸했다. 그러나 충분한 영입자금이 없어 고민이 많다. 허 감독은 "나만의 색깔을 내기 위해서는 원하는 선수들을 영입해야 하는데 기업구단의 물량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자유계약선수 위주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로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허 감독이 2012년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을지. 그 첫번째 단추를 채우기 위해 인천은 20일까지 목포에서 구슬땀을 흘린 뒤, 24일 괌으로 해외전지훈련을 떠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