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멋지고 재밌게 한번 붙어보고 싶어요."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뜨거운 사나이들의 승부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자리를 놓고 펼친 그들의 자존심 대결은 많은 이들에게 감독과 전율을 안겼다. 선동열과 최동원. 이들은 현역시절 영호남 라이벌팀인 롯데와 해태의 에이스로 만나 세 차례의 팽팽한 명승부를 펼쳤다. 마지막 대결에서 이들은 연장 15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끝에 무승부를 기록했다.
세월은 화살처럼 스쳐갔다. 20대 투수 선동열은 이제 친정팀 KIA의 감독이 됐고, '무쇠팔' 최동원은 고인이 됐다. 이들이 펼친 전설의 대결은 이제 어쩌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보직 구분이 확실한 현대야구에서 '연장 15회 투구'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전설의 대결'은 추억 속 한 장면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KIA 에이스 윤석민이 이 아름다운 대결을 재현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프로야구 1세대 레전드들에 대한 존경과 헌사, 당대 최고 에이스라는 자부심, 그리고 라이벌과 지칠때까지 붙어보고 싶다는 승부욕이 어 소망의 원동력이다. 윤석민이 바라는 '전설의 대결' 맞상대는 절친한 1년 후배 류현진이었다.
올 시즌 윤석민은 타이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야구 그 자체를 즐겨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맥이 빠지는 목표같지만, 그 의미를 차분히 생각해보면 한층 더 야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운드에서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면서 에이스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뜻. 지난 시즌 투수 4관왕(다승, 방어율, 탈삼진, 승률)을 차지하고 MVP에 오르면서 윤석민의 야구관이 한층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개인 성적에 대한 욕심은 버렸지만, 윤석민에게는 올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1년 후배이자 한국 최고 에이스 라이벌인 류현진(한화)와의 맞대결이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최고로 인정하는 사이인 만큼, 전력을 기울여 뜨겁게 부딪혀 보고 싶은 것이 윤석민의 바람이다. 윤석민은 "누가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현진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화 타자와 싸우는 거다. 마운드에서 각자 지닌 최고의 공을 던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작년에는 내가 좀 더 나았고, (류)현진이는 몸이 안좋았다. 하지만, 올해에는 서로 최고의 몸상태로 붙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급한 것이 바로 선동열-최동원의 '전설의 대결'이다. 윤석민은 "그분들처럼 15회까지 던지는 것은 무리겠지만, 현진이나 나나 최대한 오래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을 것이다. 그 명승부처럼 멋지게 한번 대결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선동열과 최동원의 마지막 대결은 87년 5월16일이었다. 25년이 지난 올해, 윤석민과 류현진이 '전설의 명승부'를 재현해낼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