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만 있는 게 아니다.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는 투수들 가운데 올겨울 '구질 다양화'를 꿈꾸는 투수들이 더 있다.
박찬호는 컷패스트볼을 올해 주요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해마다 겨울이면 많은 투수들이 새 구질을 장착하기 위해 노력한다. 배트 품질이 갈수록 좋아지고, 타자들은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꾸준히 파워를 기른다. 투수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겨울이야말로 새로운 무기를 가다듬어야 할 시기다.
삼성 오승환은 투심패스트볼을 날카롭게 다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투심패스트볼은 포심패스트볼과 달리 홈플레이트 앞에서 좌하 혹은 우하 방향으로 약간 떨어지는 구질이라고 보면 된다.
오승환은 한국프로야구의 최고 명품이라 할 수 있는 강력한 포심패스트볼을 갖춘 마무리투수다. '돌직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명성을 떨쳤다. 두번째 구질이 슬라이더인데, 본래 그다지 잘 구사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랬던 오승환이 2011년에는 슬라이더도 제구력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돌직구'와 슬라이더의 조합만으로도 오승환은 다시한번 47세이브를 기록했다.
제3의 구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승환은 타고난 투구폼이 변화구를 잘 던질 수 없는 조건이다. 삼성 사령탑 시절 선동열 감독은 "승환이는 변화구를 잘 던지기 어려운 투구폼을 갖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선택한 구질이 바로 투심패스트볼이다. 오승환은 "2011시즌에 간간이 던져 재미를 봤다. 내가 투심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타자가 배트를 내밀어서 땅볼로 아웃되면 삼진 잡을 때보다 오히려 더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구질이 단순하다보니, 그리고 변화구를 던질 때 어깨 틀어지는 각도가 조금 다르다보니 타자들이 알고서 안 친다. 투심패스트볼을 더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오승환의 포심패스트볼은 평균 147㎞ 안팎이다. 지난 시즌에는 최고 153㎞까지 나왔다. 이런 직구를 던지는 투수가 정교한 투심패스트볼까지 갖춘다면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된다. 짧은 기간에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건 어렵겠지만 더 많이 써먹을 수 있는 실전용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만 있다면 효과를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KIA 한기주는 포크볼을 익히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 역시 기본적으로 빠른 공을 갖고 있는 투수다. 2009시즌을 마치고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한기주는 지난 시즌에 복귀, 여전히 150㎞짜리 강속구를 뿌렸다.
포크볼은 직구처럼 날아가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구질이다. 요코하마 출신의 사사키 가즈히로가 미국 시애틀로 건너가 성공한 것도, 과거 LA 다저스 시절의 노모 히데오가 엄청난 각광을 받은 것도 모두 포크볼 덕분이었다.
포크볼을 던지겠다고 마음 먹은 것 자체가 호재다. 팔꿈치에 통증이 있는 투수는 포크볼을 시도하기 어렵다. 수술후 한기주가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포크볼을 제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경우, 한기주는 지금까지의 불안불안했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번의 겨울 동안 특정 구질을 완전히 배운다는 건 쉽지 않다. 투구폼을 감안한 선택이 처음부터 이뤄져야 한다. 대체로 손감각이 좋은 투수들이 새 구질에 적응을 잘 한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B라는 구질을 새로 배우려다 기존 A구질의 릴리스포인트를 잃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수들이 겨울이면 이처럼 노력하는 건, 결국 생존 때문이다. 박찬호 오승환 한기주 모두 험한 정글에서 꺼내들 새로운 무기를 가다듬는 중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