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던 게임물 등급 분류 권한이 드디어 민간에 이양된다.
심의 권한 남용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대한 국고지원이 내년까지로 한정된 것. 2006년 민간 이양을 준비하는 전단계로 만들어진 게임위는 그동안 2번이나 국고지원안이 연장된 끝에 올해 말 해체해야 하는 일몰 규정에도 불구, 민간 자율심의의 시기상조와 준비기간 부족, 심의료 상승 등의 이유를 들어 계속 버텨왔다.
하지만 국회 문화관광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지난 23일 게임위의 국고지원을 1년 연장하는데 합의하는 대신 내년 상반기까지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와 게임위가 민간 이양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어 2013년부터 시행하라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등급 분류의 민간 이양을 규정한 게임법 개정안도 내년 말까지 통과시켜 법적인 근거도 마련키로 했다.
당초 문화부는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의 등급 분류를 민간으로 넘기는 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를 게임위가 지정하고 감독하는 기관에서 실시토록 규정, 사실상 '수렴청정'을 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어 불필요한 규제를 풀겠다는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게다가 게임위는 지난 2009년 2년간의 국고지원을 연장받으면서 민간 이양에 대한 로드맵을 적어도 6개월에 한번씩 보고하라는 단서조항에도 불구,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가 일몰 시한에 임박해서야 연장 법안을 제출하는 책임 방기를 되풀이했다.
이번 문제를 국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기하고 있는 문방위 전병헌 의원(민주당)은 "문화부와 게임위가 민간에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3번이나 지키지 않았다. 이는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게임위의 해체를 강력히 주장했다. 또 "바로 해체를 하면 심의 행정공백이 우려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1년이라는 한시 조항을 달았을 뿐, 내년 상반기에 민간 이양의 주체와 범위, 시기 등을 결정해 제출하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말했다.
전 의원이 게임위 해체를 주장한 이유는 기관에 의한 사전심의 성격이 강한데다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지 않기 때문. 또 권한이 집중되다보니 각종 비리가 난무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게임위는 사행성 게임의 난립을 막겠다는 의도로 유독 아케이드 게임에 대해 비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댔다. 아케이드 게임은 '바다이야기 사태' 발생으로 '사회악'으로 낙인찍힌 후 시장 규모가 4~5년 사이 1조원에서 6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국고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불법 게임 사후관리의 경우 인력 부족과 전문성 부족, 사법권이 없는 한계 등으로 인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불법 사행성게임이 기승을 부리면서 그 규모는 40조~50조로 불어났다. 게임위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
전 의원은 "불법 사행성게임의 단속까지 민간에 맡기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는 정부의 역할이다. 게임위를 이런 불법 게임물을 사후 관리하는 조직으로 역할을 바꾸는 것이 훨씬 낫다. 또 특별 사법경찰을 배치해 단속의 실효성과 효율성을 높이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전 의원측은 문화부와 게임위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고, 문화부 고위 관계자는 게임위에 대해 특별 감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간에선 권한을 이양받았을 경우 1년 안에 큰 무리없이 자율심의기구를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게임사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는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민간 자율심의는 업계의 오래된 숙원이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이론적인 검토는 이미 끝냈다. 그동안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어 킥오프를 하지 못했을 뿐, 만약 이번 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내년 상반기 중에 실무적인 준비를 끝낼 수 있다"며 "하반기부터는 실제 심의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반복적으로 실시, 2013년부터 차질없이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시기상조나 행정공백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한국어뮤즈먼트협회를 포함한 아케이드 게임사들의 협단체는 합동으로 이미 자율심의를 담당할 재단 설립 준비를 대부분 끝마친 상황. 오히려 한국게임산업협회보다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많은 게임 관계자들은 "'준비가 안 됐다', '시기상조다' 등의 얘기는 한국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업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온 것으로 안다. 민간 자율심의는 업계의 숙원이자 세계적인 트렌드이다"라며 이번 문방위의 합의안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