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대실망이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해체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축구 A대표팀 감독 선임권을 갖고 있는 데도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조중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축구협회 수뇌부의 결정을 충실히 수행하는 꼭두각시 역할이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21일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을 대표팀 감독에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외국인 감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니, 결국 조광래 감독 경질 직후 차기 감독 1순위로 거론됐던 최 감독으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기술위는 또다시 철저하게 배제됐다. 조광래 감독 경질 결정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던 기술위가 신임 최강희 감독 선임에서도 여전히 거수기 역할 밖에 못한 것이다. 기술위원인 안익수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기술위 개최 하루 전까지도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주대 사령탑인 하석주 기술위원도 마찬가지다.
축구협회가 대표팀 감독 선임에 관한 한 모든 것을 기술위의 판단에 넘겼다고 했지만 기술위는 허수아비였다.
지난 8일 조광래 감독이 경질된 후 기술위원들은 신임 감독 선임에 관한 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지난 12일 열린 기술위에서 후임 감독 선임건에 대한 논의가 10분 정도 이뤄졌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약식으로 슬쩍 지나간 것이다. 기술위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외국인 감독이 우선이라고 흘렸지만 결국 꼼수였다. 한 기술위원은 "황보관 위원장이 남미 출신 감독을 알아보고 있다. 조만간 남미로 날아갈 것이다"고 했지만 거짓말로 밝혀졌다.
축구협회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데도 외국인 감독이 유력하다는 얘기를 흘린 것이다. 결국 처음부터 조중연 축구협회장의 의중에 따라 새 감독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축구협회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외국인 감독 이야기를 한 것이다.
노흥섭 이회택 부회장은 20일 "기술위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나는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고 강변을 했으나 이 역시 꼼수였다.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최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내정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쯤에서 한 번 짚어보고 넘어거자,
기술위는 대표팀 감독 후보를 면밀하게 체크해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술위는 제3자였다. 황보 위원장은 축구협회 수뇌의 결정을 발표하는, 얼굴 마담에 불과했다. .
이런 식으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면 기술위원들은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로 기술위의 고유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안익수 부산 감독, 하석주 아주대 감독 등 기술위원들은 현직에 있다. 소속팀에 신경을 쓰다가 기술위가 열릴 때만 모인다. 기술위원들이 모여 차기 사령탑 선임을 논의하지만 결국 축구협회 수뇌부의 결정에 따르는 모양새다.
이쯤에서 기술위의 권한을 명확히 힐 필요가 있다. 기술위원들이 대표팀 사령탑 선임작업에 관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든가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대표팀의 상대팀 전력을 분석하고, 대표 선수 선임에 조언을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 현직에 있는 상황에서 가욋일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결국 기술위가 존재감을 발휘하려면 상근직으로 가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기술위는 해체해야 한다. 지금처럼 협회장이 전권을 휘두르는 상황이라면 기술위의 역할을 포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축구협회는 특정인을 위한 단체가 아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